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특정한 상황이 되면 반드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를테면 하늘이 깨끗한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Like Someone iin Love)"이라는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린다. 재즈 세계에서는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이다. 아시는지, 요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기타 소리에 넋을 잃고 있기도 해,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하고 있으면 그런 일이 있다. 의식은 어딘지 기분 좋은 영역을 살랑살랑 나비처럼 떠돌고,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잊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긴 시간이 흐른 뒤이다. 생각건대, 사랑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하나까지가 아닐까.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있으니 간단히 단언할 수는 .. 더보기
'외로움을 떨쳐낸 눈맞춤' - ONCE 머리가 멍 해졌다. 아마 영화관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양반다리로 오랫동안 앉아 다리가 져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듯이 눈과 귀가 멀어 한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주인공이 거리에서 통기타 스트로크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사랑에 짓눌려 힘들고 외로워하는 두 남녀가 만나고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지만 결국은 사랑의 감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나아가지 않고) 돌아선다. 음악에 빠져있는 진공청소기 수리공과 체코에서 이민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두 남녀는 음악을 서로를 존중해주고 교감을 가진다. ONCE의 음악은 단순한 OST를 넘어 둘 사이의 대화이며, 이야기의 진행이며 두 남녀가 서로의 존재를 느껴가는 매개체이다. 적어도 영화를 볼 수 없다면 반드시 OST를 구해 들어.. 더보기
안개처럼 퍼진 절망의 성 - 김훈, '남한산성' 16세기 한 영웅의 삶을 부활시켜 좌절 속에서 고통을 인내해 가는 한 인간을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보여줬다면, 굴욕과 생존 속에서, 혹은 그 한데 엉켜진 덩어리 뭉쳐 있는 인간 군상들을 좀 더 여러 굴레에서 보여주는 소설이 '남한산성'이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같은 선상에서 굳이 볼 필요는 없겠으나, 삶의 총체성과 일상성을 좀 더 중층적으로, 다면적인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는 면에서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에 제법 괜찮은 속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존명과 양이 - 청에 대한 - 는 다분히 이분법적인 구도이며, 우리는 그 구도를 쉽게 내면화시키지만 현실 속에서 삶과 생존, 실과 리는 결코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기대고 있는 기둥이 그러할 뿐이며,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김훈은 담담하게, .. 더보기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를 위하여 - 김승옥, '무진기행'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질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 '무진기행' 중에서 어떤 무엇이든간에, 빈틈 하나 없는 대상을 만나면 두려워 움츠러 든다. 죽어도 깰 수 없을 것 같던 슈팅게임의 끝판 대장을 대할 때의 버거움. 연휴가 끝나고 일.. 더보기
젖은 양말같은 꿈 - '와이키키 브라더스' "그때는 몰랐지.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거든. 세상만사가 먹고 살기 힘든 곳이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지. 그때는. 그저, 나와 우리 밴드가 부르는 노래에 환호하는 모습에만 신경썼을 뿐. 정말이지 순수하게 노래를 좋아했던 그 시절엔 세상만사 따윈 중요치 않았어. 그저 노래를 부르고, 맘에 드는 여학생에게 관심주고. 그런게 인생인 줄 알았지." - 네이버 'koh1203' 문득,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게 아니라 버텨간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뜨면 맞이하는 아침, 하루에 대한 기대보다는 닥쳐올 업무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머리를 한없이 헝클어 뜨린다. 밥벌이의 일상은 고되다. 그 어떤 누구라도, 한시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하루 세번의 끼니에는 .. 더보기
'두근거림'과 '열정'의 축제 - '워터보이즈'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은 정말 쥐약이었다. 노래 흥엉거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앞에 나가서 노래하는 건 한창 사춘기 때 정말 부끄럽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리코더 시험 때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몇 소절 부르고 점수를 매기곤 했는데 그 땐 왜 그렇게 쑥스럽고 긴장했는지...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막상 실전에서 틀리고, 그 때부터 손이 어지러워지다가 실기시험을 망쳐버리면 정말 죽을만큼 속상했더랬다. 대학 입학하고 별 생각없이 들어간 탈춤 동아리가 여름에 마당극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땐, 술로 정을 다져놓은 동아리원들을 뒤로하고 나갈까 마음먹기도 했었다. 여름 방학을 올인하며 뛰어들었던 공연... 대본 때문에 밤 새우고, 다 만들어 놓으면 '아예 그냥 찢고 다시 쓸까?'는 충동이 불끈불끈 .. 더보기
집요한 기쁨을 얻었던 생애의 추억 - 알베르 카뮈, '이방인' 꼭 한 반에 그런 녀석이 있게 마련이다. 왕따라고 볼 수 있긴 한데, 괴롭힘을 당하기 보단 혼자 지내는 스타일. 학창 시절이란 굉장히 민감하고 자유롭고 싶어하면서도 또래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끼는 시기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서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귀찮아 하는, 사회적인 룰에 반하진 않지만 또한 결코 적극적으로 편입하려는 생각도 없는,,, 이따금, '독특한 세계를 가진 녀석'이라고도 부르곤 했다. 여기 '뫼르소'는 관습과 상식의, 게임의 규칙에서 떨어져 나간 인간이다. 세상 어디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위에서 말한 그런 친구들을 떠올렸다. 책 제목에서처럼 우리는 '뫼르소'를 세상의 경계 밖에 있는 '이방인'으로 부르지만, 우리 모두.. 더보기
세끼 밥과 새끼 밥 - '우아한 세계' 한창 학교에서 문학 이론에 대해 공부할 때, '오이디푸스 컴플랙스'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또 그렇게 만만치 않은 터라 확실히 개념이 들어오진 않았고 지금도 그런데, 몇 몇 단어들은 키워드처럼 떠오르는 게 있다. '남근'이라든지 '아버지의 존재 혹은 부재' 같은 것들... Cine21등을 살펴보니, 요즘 트렌드로 '아버지'가 뜨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는 작품들이 각 장르별로 나오더니 한 흐름이 되고 있나 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사회에 진입한 지금,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남성성이 점점 '아버지적인 어떤 것'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뭐 거창한 얘기 같지만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지나가다 애들을 보면 이뻐 죽겠다든지, 가족끼리 손 잡..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