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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경계를 뚫어온 사랑 - '색계' 영화를 보는 중간에는 제목을 색계(色計)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다시 제목을 찾아보니 색계(色戒)였다. 친일 매국노를 암살하기 위해서 쓰는 '미인계'으로서 보다는 '욕망'과 '경계'라는 이름이 두려움을 공기처럼 삼고 있는 한 남자와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한 여자의 슬픈 이야기의 제목으로서 더 적당한 것 같다. 이야기의 큰 축은 막부인 역의 탕자웨이를 중심으로 이끌어 가고 있지만, (탕자웨이는 정말 크게 될 것 같다) 양조위의 연기 역시 훌륭했다. 패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일본의 정세와 저항세력의 표적이 되어 살아야 하는 두려움 속에서 경계를 풀고 받아들인 여자를 결국은 죽여야 하는 고독, 친일파로서의 다른 면모는 거세한 채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의 모습으로만 묘사한 것이 이야기 전체의 농도를.. 더보기
마음이 촉촉해 진 날 - 젊은 작가들의 축제 간단히 저녁먹는 약속이었는데, 4시에 홍대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성태, 신용목씨의 작가와의 만남에 들리자고 하네요. 잘 아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작가와의 만남'같은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자리가 오랜만이라 흔쾌히 알겠다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2008 Seoul Young Writer's Festival로서, 홍대 앞 상상마당의 7층 아카데미 섹션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상상마당은 KT&G가 운영하는 비영리 문화공간으로서 문학, 독립영화, 비주류 음악 등 독립정신이 강한 다양한 문화를 소화할 수 있도록 마련한 센터였습니다. 꽤 멋지더군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전 세계의 젊은 작가군들(정의 내리기 어렵지만)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낭독하고 질의 응답을 갖는 시간이었습니다. 학부 다닐 땐 전공이 문.. 더보기
'잠실은 사직의 10시반 멀티'(??)! 회사에 부산 사람들이 반도 넘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부산 분위기에 젖어가는 게 있다. 그중 특히, 요즘은 야구가 화제다. 부산 사람들의 롯데 사랑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다. 원래 실력은 별로라도 응원과 성원은 최고라고 자부하던 차에, 감독이 바뀌고 성적도 좋아졌다. 결정적으로 게임을 참 재밌게 하는 팀 칼라로 바뀌어 - 극적으로 이길 때가 많음 - 부산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보통 여자분들 중에 스포츠, 특히 야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드문데, 부산은 여자들도 롯데를 좋아한다. TV에서 사직 관중석 비춰줄 때 한번 잘 모시라~ 술집이나 음식점에 가도 TV에서 대부분 롯데 야구를 틀어놓고 있고, 밥먹다 "와!"소리가 나 깜짝놀라 돌아보면 롯데가 점수를 내고 있을 때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원래 .. 더보기
우리가 꿈꾸던 달콤함 - '첨밀밀' 수많은 사람이 뒤엉켜 있는 도시, 홍콩에서 뉴욕으로 이어지는 10년간의 인연이야기. 그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겠거니 했으나 아프고 가슴시린, 삶의 진한 육수가 배어나온 영화였다. 나는 사랑과 운명 사이에서 떠돌며 주저하는 두 주인공도 좋았지만 암흑가의 보수 '표'가 정말 멋있었다. 인생을 지대로 쿨하게 살 줄 아는 비극적인 운명의 멋진 사나이. 조폭이 이렇게 멋지게 표현되니 한 때 홍콩 느와르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을까? (미디어몹 : 2008/03/08) 더보기
두려움 - '추격자' 비인간적이었다. 그렇게 빈틈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짜맞출 수 있을까? '추격자'는 을 가장 완벽한 스토리와 뼈대, 연출로 파해친 영화다. 여기서 두려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잔혹한 살인 뿐만은 아니다. 서울 시장의 얼굴에 똥물을 부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경찰서장은 허둥지둥 대고, 자기가 시킨 성매매의 포주는 자신의 오더로 인해 그녀가 죽었을까봐 계속 두려워한다. 나는 그 두려움과 두려움의 연속 속에서 계속 긴장할 수 밖에 없었는데, 중간 중간에 엮이는 코믹이 그 긴장을 살짝 이완 시켜주기도 했다. 영화의 연출력이란 것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화면이 바뀔 때 스크린의 넘김이나 들려오는 소리 음악이 아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나오지 않았지만 밸런스 있었.. 더보기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특정한 상황이 되면 반드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를테면 하늘이 깨끗한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Like Someone iin Love)"이라는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린다. 재즈 세계에서는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이다. 아시는지, 요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기타 소리에 넋을 잃고 있기도 해,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하고 있으면 그런 일이 있다. 의식은 어딘지 기분 좋은 영역을 살랑살랑 나비처럼 떠돌고,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잊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긴 시간이 흐른 뒤이다. 생각건대, 사랑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하나까지가 아닐까.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있으니 간단히 단언할 수는 .. 더보기
'외로움을 떨쳐낸 눈맞춤' - ONCE 머리가 멍 해졌다. 아마 영화관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양반다리로 오랫동안 앉아 다리가 져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듯이 눈과 귀가 멀어 한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주인공이 거리에서 통기타 스트로크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사랑에 짓눌려 힘들고 외로워하는 두 남녀가 만나고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지만 결국은 사랑의 감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나아가지 않고) 돌아선다. 음악에 빠져있는 진공청소기 수리공과 체코에서 이민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두 남녀는 음악을 서로를 존중해주고 교감을 가진다. ONCE의 음악은 단순한 OST를 넘어 둘 사이의 대화이며, 이야기의 진행이며 두 남녀가 서로의 존재를 느껴가는 매개체이다. 적어도 영화를 볼 수 없다면 반드시 OST를 구해 들어.. 더보기
안개처럼 퍼진 절망의 성 - 김훈, '남한산성' 16세기 한 영웅의 삶을 부활시켜 좌절 속에서 고통을 인내해 가는 한 인간을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보여줬다면, 굴욕과 생존 속에서, 혹은 그 한데 엉켜진 덩어리 뭉쳐 있는 인간 군상들을 좀 더 여러 굴레에서 보여주는 소설이 '남한산성'이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같은 선상에서 굳이 볼 필요는 없겠으나, 삶의 총체성과 일상성을 좀 더 중층적으로, 다면적인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는 면에서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에 제법 괜찮은 속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존명과 양이 - 청에 대한 - 는 다분히 이분법적인 구도이며, 우리는 그 구도를 쉽게 내면화시키지만 현실 속에서 삶과 생존, 실과 리는 결코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기대고 있는 기둥이 그러할 뿐이며,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김훈은 담담하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