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學과 藝術의 뜰

안개처럼 퍼진 절망의 성 - 김훈, '남한산성'


16세기 한 영웅의 삶을 부활시켜 좌절 속에서 고통을 인내해 가는 한 인간을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보여줬다면, 굴욕과 생존 속에서, 혹은 그 한데 엉켜진 덩어리 뭉쳐 있는 인간 군상들을 좀 더 여러 굴레에서 보여주는 소설이 '남한산성'이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같은 선상에서 굳이 볼 필요는 없겠으나,

삶의 총체성과 일상성을 좀 더 중층적으로, 다면적인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는 면에서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에 제법 괜찮은 속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존명과 양이 - 청에 대한 - 는 다분히 이분법적인 구도이며, 우리는 그 구도를 쉽게 내면화시키지만 현실 속에서 삶과 생존, 실과 리는 결코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기대고 있는 기둥이 그러할 뿐이며,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김훈은 담담하게, 격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시 김훈의 매력은 '접지 않고, 구기지 않고, 펴서 내지르는', 그 건조하고 강렬한 문체에 있다.

'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나의 선대 황제 이래로 너희 군신이 준절하고 고매한 말로 나를 능멸하고 방자한 침월로 나를 적대함이 자심하였다. 이제 내가 군사를 이끌고 너의 담 밑에 당조하였는데, 네가 돌구멍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몸뚱이는 다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을 굴 속으로 처박은 형국으로 천하를 외면하고 삶을 훔치려하나, 내가 너를 놓아주겠느냐. 땅 위에 삶을 세울 수 있고 베풀 수 있고 빼앗을 수 있고, 또 구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을 훔칠 수는 없고 거저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는 명을 아비로 섬겨, 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꺼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 말하라.'

결국 임금은 삶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백성들과 모두의 삶을 구했다. 굴욕을 이기고 삶은 구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이냐는 각자에 따라 모두 다를 것이다. 그 다름과 다름의 엉킴을 이 책은 정말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절망은 이겨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눌리워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절망은 단지 견디어내는 것 뿐이다. 나는 절망의 순간에 얼만큼 담담해 질 수 있을까, 단단해 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요즘 나의 일상과 더불어 스쳐 지나갔다.

(미디어몹 : 200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