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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특정한 상황이 되면 반드시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를테면 하늘이 깨끗한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Like Someone iin Love)"이라는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린다. 재즈 세계에서는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이다. 아시는지,
 
요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기타 소리에 넋을 잃고 있기도 해,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하고 있으면 그런 일이 있다.
 
의식은 어딘지 기분 좋은 영역을 살랑살랑 나비처럼 떠돌고,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잊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긴 시간이 흐른 뒤이다.
 
생각건대, 사랑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열여섯에서 스물하나까지가 아닐까.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있으니 간단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아래라면 뭔가 유치해서 우스울 것 같고, 반대로 이십대가 되면 현실적인 것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보다 많은 나이가 되면 쓸데없는 잔꾀가 늘게 되고 말이다.
 
그러나 십대 후반 소년소녀의 연애에는 적당하게 바람이 빠진 듯한 느낌이 있다. 그들은 깊은 사정을 아직 모르니 현실에서는 투닥거리는 일도 있겠지만, 그만큼 모든 것이 신선하고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런 날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영원히 잃어버린 뒤라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러나 기억만큼은 신선하게 머물러 그것이 우리의 남은 (아프디 아픈 일이 많은) 인생을 꽤 유효하게 따뜻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줄곧 소설을 써오고 있지만 글을 쓸 때도 그런 '감정의 기억'이란 몹시 소중하다. 설령 나이를 먹어도 그런 풋풋한 시원(始原)의 풍경을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몸속에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귀중한 연료를 모아 두기 위해서라도 젊을 때 열심히 연애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별을 바라보거나 기타 소리에 미친 듯이 끄려들거나 하는 시기란 인생에서 극히 잠깐 밖에 없으며,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방심해서 가스 끄는 것을 잊거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도 가끔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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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극히 짧은 뜨거운 시간이 돌이켜보면 따뜻한 난로가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은 영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나니, 조금 슬퍼진다.

꽤 오래전에 보아 두고두고 음미했던, 하루키의 짧고 멋진 문장

(미디어몹 : 2008/01/06)
  1. 차탈래부인 blog 2008-01-06 22:18

    하루키가 말한 그 나이 무렵엔 누구나 길 위에 있는 인생처럼 느끼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연애를 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오래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머물지 못하고 스쳐가기에 '감정의 기억'이란 것도 생기게 되고 그 기억이 어떤 이에겐 쓰라리지만 또 어떤 이에겐 풋풋하거나 따스한 추억이 되는 거지요. 춥지 않게 늙어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가야겠지요. 음... 이외수가 그랬어요. '나쁜 이'는 '나뿐인 이'라고.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나쁘다구요. 비록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더라도 사랑때문에 넋이 나갈 수 있는 나이라면 좋겠네요, ㅎㅎ.

    1. 음유시인 blog 2008-01-06 23:40

      '사랑 때문에 넋이 나갈 수 있는 나이', 나이도 나이지만, 그런 감수성을 언제나 갖고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감정이 풍부한 나이, 세대는 분명히 있겠지만...

      계산적이지 않은, 이해타산적이지 않은 삶은 어느 나이대에나 존재하는 법이겠죠? 점점 살아가는 게 이런 지향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씁쓸할 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