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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문명과 야만의 조각 -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사람이 동물에서 인간 모습을 점점 더 갖추어갈 즈음 오래 전 어느 때, 태초라고 부를 정도의 원시의 세계에서 유목 생활에 근거한 '초'나라와 농경 문화의 '단'나라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역사로 보자면 고조선보다도 이전 시대, 인간이 문명화되고 있는 시기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말, 말과 말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묘사하였다. 이미 상상력의 규모가 SF수준인 스케일의 신화적 작품이라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다만 중국 농경 민족이나 우리나라가, 북방 유목 민족과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던 경험과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대략 그 시대의 대립에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훈 선생님의 섬세하고 강인한 풍경묘사와 그 사실적인 묘사가 서사로 이어지는 힘을 무.. 더보기
포수, 무직, 담배팔이 - 김훈, '하얼빈'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 주었다. (중략...)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중략...)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밥벌이를 하는 틈틈이 자료와 기록들을 찾아보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의 족적을 찾아서 일본의 여러 곳을 들여.. 더보기
뮤지컬 영화라... - '인생은 아름다워' 좋아하는 국립외교원 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본 감상평을 보고 와이프와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차 쓰고 CGV판교로 갔다. 이 영화에 나왔던 조조할인으로 ㅎㅎ 우리나라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뮤지컬 영화다. '라라랜드'를 연상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아쉽지만 라라랜드 같은 수준있는 뮤지컬 라인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내나이 또래에 한창 들었던 1990년~2000년 음악을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추억을 곱씹을 수는 있었다. 중간에 류승룡식 깨알 유머도 괜찮았고, 마지막에 눈물 바다를 유인한 설정도 있었다. 울다가 웃기다가하는 감정의 파도는 일렁였으나 전반적으로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보기
사기꾼의 야구공 - 넷플릭스 '수리남' 그저 압도적으로 재밌는 시리즈물이다. 무엇보다 이런 다이나믹한 이야기가 실존을 바탕으로 했던 점이 놀라운데, 실제 윤종빈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화가 더 영화적이어서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뺄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서스펜스 스릴러의 최고봉이고, '오징어게임'만큼 잔인하지는 않으면서 그 못지 않게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미친 재미의 작품이었다. 사실 한 회가 끝나고 몇 몇 인상 깊은 장면은 다시 되돌려 보기도 했는데 그래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실화가 해피엔딩이라 결말도 결국엔 해피엔딩일 거라고 이해하고 보면 좀 두근거리는 건 덜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직접 보면서 쫄린 긴장감은 반드시 직접 느껴봐야 한다. 넷플릭스의 코멘터리 링크 걸어둔다. https://www.youtube.com/w.. 더보기
의와 불의의 싸움 - '한산' 이미 통쾌한 승리의 해피엔딩임을 모두다 아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디테일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얼마나 정교하게 디테일을 끌어올리냐가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영화 '한산'은 한산대첩 출정 전 며칠과 한산 대첩 후 부산포까지 공격해서 쓸어버리는 단 며칠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정교하게 풀어내었다. 무엇보다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과장과 찬양을 최대한 배제하고 담담하게 그려내어 좋았다. 역시 스펙타클은 해전씬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거북선'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선이 적 안택선에 부딪혀 파괴할 때 나는 격렬한 사운드는 마동석 영화의 펀치 소리 만큼이나 통쾌하여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울러, 이순신 장군이 한산.. 더보기
조선의 하늘과 시간 - 넷플릭스 '천문' 예전 SBS의 '뿌리깊은 나무'를 보신 분이면 반가울 작품. 오히려 한석규씨가 세종대왕을 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어색했을 법한데, 사실 그래서 약간 '뿌리깊은 나무'의 영화판 외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세종대왕 시기 과학적 업적으로 장영실의 여러 발명을 칭송하고 있지만 조선이 스스로 천문학을 키우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그 당시 사대부의 세계관과 배치되었고, 명의 견제가 있었다는 점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과장스러운 부분이 꽤 있어서 매끄러운 느낌은 들지 못했지만 뿌리깊은 나무를 떠올리면 러닝타임 두시간을 꽤 의미있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 더보기
다시 돌아 찾아온 사랑 - '러브 & 드럭스' 유쾌하고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 뭔가 돌아가지 않고 직진하는 로맨틱 코미디다. 사실 이렇게 정직한 로맨스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눈빛만 주면 여자를 꼬실 수 있는 재이미(제이크 질렌할)과 매기(앤 해서웨이)의 사랑이야기. 파킨슨병에 걸린 매기를 사랑할 수 있는가 없는가 번민하다 결국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무난한 스토리인데 두 주연배우 연기가 말 그대로 러블리해서 두시간 순삭했다. 복잡하고 미묘하게, 그리고 절묘한 수많은 사랑이야기 보다 이렇게 담백하고 솔직한 연애 이야기가 고프다면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 더보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 '불편한 편의점' 김훈, 김영하의 작품을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에 읽은 한국 소설이었다. 우연히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 코너에 갔는데 관심이 가서 검색해 보니 거의 수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5위권 안에서 벗어나지 않아 꾸준히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보였다. 느낌은, 요즘 트렌드를 잘 반영한 잘 만든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지만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감각적이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편의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각 챕터별로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묘사해 갔던 것도 그렇고, 현 시대에 각자 가지고 있을 법한 고민들을 나름 따뜻하게 그려낸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때문인지 2편도 나왔는데 이 또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시즌 2를 연상하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