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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포수, 무직, 담배팔이 - 김훈, '하얼빈'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 주었다. (중략...)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중략...)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밥벌이를 하는 틈틈이 자료와 기록들을 찾아보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의 족적을 찾아서 일본의 여러 곳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그 원고를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늙었다. 나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변명하지만 게으름을 부린 것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뭉개고 있었다.

2021년 나는 몸이 아팠고, 2022년 봄에 회복되었다. 몸을 추스로고 나서, 나는 여생의 시간을 생각했다. 더이상 미루어둘 수가 없다는 절박함이 벼락처럼 나를 때렸다. 나는 바로 시작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 Page 303~306, 작가의 말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되기 전까지 매 챕터는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일인칭 시점으로 병렬로 나아간다.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얼빈으로 이동했는지(혹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안중근은 어떤 마음을 품고 역시 하얼빈으로 나아갔는지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다 하얼빈 저격 이후부터는 안중근과 천주교회로 시점이 옮겨진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돌아가셨는데, 이 날은 순종황제의 생일(3월 25일)과 부활절(3월 27일)의 사이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당시 천주교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죄인으로 여겼고 이 관점은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의사의 추모 미사를 집전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김훈 선생이 의도하였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안중근 의사의 의거(희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이를 테면 안중근에게 면회를 온 동생 안정근과 면회할 때의 나눈 조금 씁씁한 아래 대화이다.

'-담배란 참 좋구나, 라고 안중근이 중얼거렸다. 안중근이 담배를 눌러 끄고서 말했다.

- 빌렘 신부님은 아직도 신천에 계시냐?

- 신천에 계십니다. 부지런히 사목하시어서 신자가 늘어났고 교세도 커졌습니다. 신천의 관리들도 대민 업무를 신부님과 상의합니다.

 - 나 때문에 상심하셨겠구나.

 - 그렇습니다. 신자들에게 형님이 하신 일을 좋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형님이 이미 영세를 받고 입신했기 때문에 형님의 죄가 더 무겁다고...

 - 그럴 테지, 신부님은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는 힘센 나라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다고 신부님은 말했지만 사람의 땅 위에는 국경이 있다.

 - 신부님의 노여움이 신천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 집행 전에 신부님을 한번 뵙고 싶구나. 너는 돌아가면 내 뜻을 신부님께 전해라.

 - 전하기야 하겠지만, 신부님을 이리로 모실 자신은 없습니다.

 - 쉽지는 않을 거다. 신부님께 내 영혼을 의지하고 싶다고 말씀드려라.' - Page 259~260, 27장

 

이 작품에 대해서 SBS뉴스에서 김훈 작가가 나눈 인터뷰를 아래에 옮겨 놓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AlvxLDDe8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