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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회사 교육 중에서 '김덕수'씨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시간 조금 넘는 그의 강연은, 요약컨데 이런 거였다.

- 우리의 '악(樂)'이 일상에 젖어 있지 못하다.
- 우리의 '악(樂)'은 세계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모두 옳은 말이었으나, 그가 생각한 대안이랄까? 앞으로 사물놀이가 가는 방향에 대해선 조금 의구심이 들었다.

강연 끝무렵에 재즈 피아노와 접목된 사물놀이 음반을 들려주면서, 이것이 우리가 세계적인 감성과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겠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사물놀이를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 소리가 조금 어색하게 들렸다. 비록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일이 어떤 리듬과 가락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말할 순 없지만,

그다지 독특하다거나 멋지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나도, 폐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사물놀이는 쇠, 징, 북, 장구만으로 해야 하고, 재즈는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 섹소폰으로만 소리를 내야한다고 믿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태지의 '하여가'처럼 충분히 퓨전 중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것들도 있을 테지...

그러나 김덕수의 이번 소리는 뭔가 어거지 느낌이 들었다.

목표에 매몰되어 예술의 궁극적 목적인 감동에 닿지 못하는 느낌.

혹은, '김덕수'라는 이름이 주는 권위에 편승한 신명의 강요랄까?



2.

더위가 슬 물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우리 아파트 옆, 중랑천은 참 아름답다.

조그만 베드민턴 라켓을 옆에 끼고 엄마 손을 잡는 아이부터
누가 입만 살짝 열어도 까르르 미소를 쏟아내는, 교복입은 여고생들의 무리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며 잡은 두 손에 살짝 힘을 쥐어주는 신혼부부, 연인들...

돗자리를 깔고 서로의 하루를 얘기하는 어머니, 아버지들,

그들을 두고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헤드라이트 불빛과 가로등이 중랑천 고요히 흐르는 아름다운 물결에 반사되는 가로의 길을 음악을 들으며 걷거나 뛸 때는 정말 행복하다.

때론 땀을 식히며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만 해도 가슴이 가득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외진 섬에서 일하는 내가 서울 본가에서 느끼는 소중한 기쁨이기도 하다.


3.

오늘 저녁 조깅하면서 우리 아파트와 중랑천 뚝방길을 연결하는 육교를 건너는데, 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꼬마 애들은 귀를 막고, 어른들은 짜증을 냈다.

뭔가 봤더니, 중랑천 뚝방길 정자에서 네명의 중년 남녀들이 반팔 티셔츠를 맞춰 입은 채 웃다리 가락을 사물놀이로 치고 있었다. 대학시절에 나도 쳐본 가락이 있어 잠시 서서 들었다. 아마 동네 조그만 동호회처럼 운영하는 사물놀이 패겠지. 아마추어치고 상당한 실력이었다.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었고, 구경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예전에 쳐 본적이 있는지 남은 북을 잡아 치며 연주에 끼어들었다.

점점 흥은 달아올라 갔다.

때론 구경하는 젊은 이들은 발로 장단을 맞추고, 어르신들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구경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연주에 빨려들어갔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는 연주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반해 버렸다.

연주하는 내내 서로 악으로, 소리로, 때론 눈짓으로 대화하는 기쁨에 찬 표정들... 모두가 신나게 치고 있었다.

사물놀이는 보는 것과 달리 상당히 정교하게 장단을 쪼개 소리를 낸다. 잘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막 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상당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사물놀이에 취한 구경꾼들이 그 정교한 장단에 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신명에 찬 연주의 분위기가 구경하는 이들의 신명을 흡입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뭐지(?)하고 왔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연주하던 그 아마추어 동호회 사물놀이패는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연주를 보면서 나는 우리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사물놀이를 보았다. 재즈 피아노에 맞춰진 장구와 북이 아니라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는 저녁밤을 흔들었던 그들의 신명이, 우리의 어깨와 발장단을 일깨운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 조깅하던 풋내기의 머리에 떠올랐다.

(미디어몹 : 2007/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