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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닫는데로/viSit Kingdom

National Gallery의 카페에 앉아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 멜번이 런던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런던에 와 보니 도시 온 전체에서 멜번 냄새가 났다. 내가 멜번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런던에서 멜번의 향기가 난다고 했지만, 사실 멜번이 런던을 닮은 거겠지.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멜번과 비슷하기 때문에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어제는 아무 곳도 가지 않고 숙소 근처만 잠시 돌아다녀서 그런지 더욱 그랬다. 홍콩, 뉴질랜드, 호주같은 영연방 국가 위주로 다닌데다 영국에 왔으니, 이젠 식상할 법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오전 시내 중심부를 둘러보니 역시 사람들이 왜 런던을 입에 올리는지 알 것 같다. 의회 건물과 St. James Park, 특히 웅장한 버킹검 궁전은 전통과 문화, 역사의 관록을 물씬 풍긴다.

그 뒤편으로는 뮤지컬 거리가 늘어서 있고 국립 미술관과 젊음의 거리 코벤트 가든이 펼쳐져 있다. 이런 매력에 매년 수 많은 관광객들이 영국, 런던을 찾는 것은 아닐지... 그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저마다 서로 다른 언어가 흐트러져 들어온다.








홍콩을 여행할 때에도 그랬지만, 이제 도미토리 룸에서 자는 건 별로다. 혼자 숙소에서 편하게 운신할 수도 없고, 시끄럽고 바스락거리며 신경 쓰인다. 예전엔 혼자 있는 것보다 도미토리에서 외국인 여행자들과 어울려 있고 싶어했는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예전보다 여행하면서 모험 정신이 약해져서 그런 것 같다.

확실히 예전에는 여행 자체가 즐김(enjoy)의 성격도 있었지만, 또한 도전이기도 했다.

첫째는 내 외국어 실력에 대한 실전 테스트였고, 둘째는 낮선 곳에서 뜻하지 못한 상황과 부딪히고 극복하는 모헙이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하고 돌발적인 상황도 즐기고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외국에 돌아다니는 행위 자체는 많이 익숙해졌고, 실전에서 외국어를 써야 한다는 노력과 강박, 모두 희미해졌다. 결국 말 그대로 휴가의 의미로 이제 내 여행의 개념이 바뀌어 버렸다.

가보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들을 보면서 느낀 바를 사진과 글로 남기고 되새겨보는 것.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공간의 이방인이 됨을 즐기는 것이 이제 내 여행의 가운데에 자리잡는 것 같다.

약간 아쉽기도 하지만, 이렇게 내가 바뀌는 것은 그 나름의 이유도 있겠지.

(미디어몹 : 2007/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