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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닫는데로/viSit Kingdom

London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가 태어난 곳에서 지금까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비행기 안, 이제 7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한번 하고,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었으니 한번 더 식사를 하면 도착하겠지. 학창시절이나 회사나 여행이나, 사람 살이는 이러쿵 저러쿵 해도 밥먹고 자는 것으로 대부분 토막낼 수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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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왜 영국이었을까? 누군가에게 끌리는 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에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끌림'같은 거였는데, 굳이 근거를 찾는다면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유럽을 가고 싶었고, 짧은 시간에 먼 유럽으로 떠나는데 여러 나라를 볼 순 없다고 판단했다. 그 중에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다.

우선 영어를 쓰고, 지금까지 내가 가 봤던 영연방 국가의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던지,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구처럼 내가 할 줄 아는 말을 사용하던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운신의 폭이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천둥 벌거숭이처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도, 소심한 나는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말을 못해 답답해하는 상황을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처음으로 국제적인 사고와 경험을 심어주었던 나라 - 호주와 뉴질랜드 - 의 모태국가인 영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이루어 세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미국과 달리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등은 Queen Elizabeth II를 상징적 국가원수로 섬기는 영연방 공동체다. 이들 각 국은 영국적인 시스템과 여왕이라는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영국을 여행하며 그 나라들에 남겨진 뿌리와 근원을 찾아보고 싶었다.

둘째, 이건 감성적인 부분인데, 난 "영국"에 문화와 역사적으로 전통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Beatles와 프리미어 리그의 고장, 왕실과 귀족문화, 유서깊은 전통 문물들, 산업혁명의 시발점, 전 세계를 쥐고 흔들었던 제국의 위엄, 미국처럼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발달된 시장경제를 갖고 있는 나라... 떠오르는 이미지만으로도 뭔가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독일 등에 빠순이 빠돌이가 있는 것처럼 나도 영국에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 환상을 머리에 이고 영국의 거리 거리를 밟아 나가고 싶었다.


셋째, 영국의 사회와 경제를 둘러보면서 뭔가 배울 점이나 참고할 점이 있을 것 같았다. 국토 면적이나 거대한 대륙을 옆에 둔 지리적 위치도 비슷하고 지역별로 색깔있는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나라.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제조 강국에서 이제는 금융, 유통, 물류, 교육, 관광등 서비스 산업으로 부흥을 이룩하는 경제.

선진국형 자본주의로 진입해 들어가는 우리나라의 비전을 세우는데, 영국이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영국형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참고할 부분은 충분히 있을 거 같았다.


단지 일주일의 여행으로 이런 것들을 얼마나 느낄 수 있으랴마는 머리 속에 개념적으로 담아두는 것 보다는 눈으로 하나 둘 짚어나가고 느껴보는 게 좋겠지... 어쨌든, 휴가는 휴가니 모든 걸 잊어버리고 떠나야 한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 있는 지금도 뭔가 회사 업무에 실수는 없이 처리하고 출국하는 건지 신경쓰이긴 하다.

(미디어몹 : 2007/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