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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아스라한 길, 그 기억을 위하여 - 김훈, 박래부의 문학기행

 

이옹이 보여 주는 '한산이씨세계일람표'는 매우 특이한 족보였다. 그 족보는 모든 것을 헐어내고 뭉개버리는 세월의 저 무서운 힘에 대항하기 위하여 이옹이 고안해 낸 특이한 족보였다. 그 족보는 가문 구성원의 명단을 망라했을 뿐 아니라, 도시 계획과 개발에 의하여 자꾸만 쫓겨 가야 하는 옛 할아버지ㆍ할머니들의 산소의 위치를 일일이 도면으로 그려 넣고 있다. 그 희미한 도면 속에서 할아버지ㆍ할머니의 산소 자리는 자꾸만 바뀌면서, 그 자리에 학교ㆍ주택ㆍ주막들이 들어서고 있다. - 김훈, 관촌수필

 

연민과 분노는 '금강'의 기본 골격일 뿐 아니라 그 장시가 그리고 있는 최제우ㆍ전봉준ㆍ최시형 같은 동학의 어른들이 당대의 현실을 대하고 서 있던 마음의 바탕이었다. 최제우는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완벽하고 참담하게 절망해 버린 인간이었다. 최제우에 있어서 세상 쓰다듬기(연민)와 세상 쳐부수기(분노)는 전혀 다르지 않다.

최제우의 연민과 분노는 모두 그의 거대한 절망으로부터의 개안(開眼)에서 온다. 다만 전봉준에게는 세상쳐부수기가 세상 쓰다듬기보다 절박했고, 최시형에게는 세상 쓰다듬기의 크고 자애로운 손이 세상 쳐부수기의 쇠스랑보다 종교적으로 거룩한 것이었다. 전봉준과 최시형은 정해진 사형장을 향하여 함께 걸어가는 그들의 생애의 길 위에서 크게 반목하였다. - 김훈, 금강

 

과장된 기법에 의해 황폐해진 인간군들을 그려내는 이 작업에 대해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현실 속에서 초라하게 느낀 자의식을 즉자적으로 표출하는 경향"이라고 정의하고 "무언가 불만스럽고 담답하고 한없는 소외감을 느끼면서 그것을 자화상적인 독백으로 그려냄으로서 그 작품들은 형편없이 초라하고, 뒤틀리고, 정상적 인체 비례를 갖추지 못한 인간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것"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소설과 회화의 현실인식과 방법론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형편없이 초라하고, 뒤틀리고, 정상적 인체 비례를 갖추지 못한' 인간들이 외형상으로 난쟁이ㆍ앉은뱅이ㆍ곱추로 표현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관점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산업사회에 들어와 우리 모두가 난장이 같은 인물들이 되었다. 나는 그 때 '긴급하다'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썼다.""고 말한다. - 박래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