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과 藝術의 뜰2009/06/23 16:20

제목이 주는 도발적인 질문과 결혼 제도에 대한 왈과왈부를 떠나서, 아주 단순히 이 책을 본다면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매력적인 여성 때문에 애 태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뼈다귀 외에 많은 것들이 섞여 있지만,

우리의 상식을 말하는 덕훈이 있고, 그 상식은 현대(근대)가 낳은 산물일 뿐이라며
고대 인류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인아가 있다.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덕훈에게 감정이 이입되었고 자기 맘대로 사랑과 결혼을 해석하는 인아가 미웠다.
책을 읽는 내내 덕훈과 함께 계속 애태우게 되었다.

하나 생각할만한 점은,
우리가 발칙하다고 할 만한 이러한 상상이 사실은

남녀의 입장을 바꿔놓고 보며는 사실은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남녀관계의 역사였다는 점. 그래서 바람기 많은 남자와 어쩔 수 없이 이혼하지 못하고 사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로 치환했을 때는 그렇게 발칙하고 이상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 쓸쓸하다.
※ 덕훈 할아버지, 아버지가 바람둥이 오입쟁이였다는 사실이 거울처럼 비춰준다.

그래도 이 책에서 사랑이란, 독점하고 싶은 욕망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버리진 못한다.
항상 쿨하게 연애하는 것 같은 인아도 잠시 덕훈이 함께 한 여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궁금해 하니까 - 혹은 불안해 하니까, 또 인아와 비슷한 생각으로 인아의 두집 살림을 알고 들어오는 재경도,
인아가 또 다른 남자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몸서리치니까.

나도 한 때, 어느 적정한 선만 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들과 섞여 어울리는 것에 관대했다가
배신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역시 사랑을 독점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것이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이
쿨한 것은 아니고 솔직한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느끼게 된다. 물론 억압과 독점도 좋진 않지만

사랑에는 울타리가 생기고 서로의 울타리라는 것은 책임을 수반하게 되니까.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보다 더한 가슴저림을 느꼈던
그래서 읽는 내내 계속 불편했던 작품.
Posted by 위센셩
文學과 藝術의 뜰2009/05/31 22:38

<마더>는 모성을 주제로한 영화다,는 것보다
<마더>는 모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보인다. <마더>의 이야기를 모성에만 한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지체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물론 <마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지만 이 영화는
가족, 폭력, 성애, 공권력의 무능, 가난, 권력등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다루고 있다.



거장이라고 할 만한 감독들을 언급할 때, 최근 칸 때문인지 봉준호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 '죄악과 복수'라는 키워드가 너무 공고히 가는 나머지 어떤 틀에 갖혀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것을 감독이 작품세계를 구축해가면서 자기 색깔을 찾아간다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박쥐>에서 나는 뭔가 새롭다든지 신선하다든지 하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당연히 <마더>를 보면서 모든 사건이 진실을 찾아 딱딱 정리되어 가면서 친절히 진실을 알려주는, 그래서
관객이 '아-'하며 극장 밖을 나가는 모양새를 만들지 않았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전작 <살인의 추억>처럼
더욱더 치밀하고 극적으로 관객을 몰고가는 탁월함이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거짓된 진실에 맞서 아들을 구하려고 하는
그래서, 모든 관객의 공감하고 하나로 몰입되었던 어머니가 살인으로 진실을(진실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진술을) 은폐하는
반전은 정말 충격과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뒤섞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변주를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변주가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인지, 마음에 든다.

여기 씨네21에서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중 몇 가지 것들을 옮겨와 봤다.

   Ο '엄마와 살인사건'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
       김혜자의 어두운 면과 광기와의 접합

   Ο 섹스가 이 이야기에 들어가 있고, '엄마'는 섹스의 반대말이다. 엄마들이
       그렇게 억눌려 있기 때문에 고속버스에서 아저씨들과 부비부비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Ο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가 화두라기보다는 엄마를 고립되게 하고
       그 다음에 엄마가 어떻게 움직이냐를 관찰하게 하는 영화의 시발점이다.

   Ο 억눌린 성적 욕망은 인간 히스테리의 기본이 아닐까.
       도준은 섹스를 하고 싶은데 못하고
       이정이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고
       마을 남자들은 욕망에 뒤틀려 있고
       그 가운데 섹스로부터 차된된, 생리대도 쓴지 오래된 엄마가 그 한 복판에 들어간다는 것.

Posted by 위센셩
frEe Style2009/05/30 10:57

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서거 소식에 놀랍기도 했지만,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그 신념에 역시 놀라기도 하였다. 사실 그의 인생이 죽 그렇게 흘러왔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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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당시 나는 군대에 있었다.

세상사 모든 것에, 심지어 스스로에게 무기력해진 지금의 나와 달리
대학 새내기에 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1999년만 하더라도 지금보다 국민 일반의 의식이 훨씬 보수적이었고
닫혀있었다. 새내기의 나는 뭔가 더 좋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고
진보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물론, 소심하고 용기없는 나는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실천가는 아니었지만,
진보적인 사회로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으로는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대학 2년 반을 보내고 군대에 들어갔을 때, 대통령 후보로 나선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진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상징이 되어 있었다. 아니, 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식과 원칙이 사회 전반에 깔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 노무현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그가 살아온 길들을 되짚어 볼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죽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가 되어있었다.

대통령 재임 당시, 탄핵이며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수없이 몰매를 맞았지만, 그가 그런 이슈들 사이에서 연설하고
발언한 내용을 찬찬히 들어보면 다 맞는 것 같았다. - 대연정은 조금 무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 FTA나 이라크 파병 때문에 진보적인 친구들이 실망감에 돌아설 때에도 나는 그냥 조용히
'잘 했으면'하는 마음에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한창 '안되면 노무현 탓'이 유행할 때에도 씁쓸히
'이건 아닌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퇴임 후 봉하마을로 돌아가고,
자연인으로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한명숙 전총리의 조사대로 모진 세상은 그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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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혹은 적어도 그의 일가가
오래된 후원자인 박연차등에게서 600만 달러를 받았는지, 어떻게 했는지
1억짜리 시계를 받았는지 등은 잘 모르겠다.

600만달러라고 하면 큰 금액 같지만, 사실 60억원 정도 된다.
60억원이면 강남의 좋은 아파트 3채 정도 될 것이다.

세상에 권력을 가진 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자에게 오르내리는 금액으로서
60억원은 어떤 액수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훨씬 많이 해 처먹고도 뻔뻔하게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휭행하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일생을 관통한 원칙과 소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 어려운 길을 택한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나도 슬프지만 결국에는 승리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이켜보건데
평생을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옳지 않음을 옳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일생을 닦아온 사람이 있는데
그리하여 그 원칙과 소신 때문에 무수히 많은 좌절과 쓰디쓴 상처를 받기를 주저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조금의 외풍에도 흔들리고
좌절하고 고뇌하며 모든 걸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나를 바라보건데 너무나 부끄러워 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TV를 보면서, 동영상을 보면서, 분향소에 헌화를 하고 조문을 하면서
자꾸만 자꾸만 주르르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Posted by 위센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