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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중국 제조업의 무시무시함과 빈 공간에 대하여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TEMU의 한국 진출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TEMU에서 볼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가격의 수많은 상품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사실 5~6년전 중국에 부임해서 현지의 타오바오(알리바바 중국국내판)와 핀뚸뚸(TEMU의 중국국내판)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건 없는 소식이었다.

 TEMU가 2023년 7월에 한국에 런칭한 후 알리익스프레스도 마케팅 전쟁에 뛰어들고 거기에 중국 내수 경기 하락에 따른 제조사 재고 처분에 대한 압력이 가해져 경쟁적으로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알리익스프레스는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은 예전부터 종종 사용하곤 했었는데 2023년 상반기까지는 저런 가격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중국 근무시 주로 징둥을 사용하였고 짝퉁이라도 상관없이 저렴한 제품이 필요하면 타오바오를 사용했었다. 징둥은 우리나라 쿠팡의 로켓배송처럼 직매입 위주라 조금 비싸더라도 짝퉁 없고 배송도 빠르다. 핀뚸뚸는 한번도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시장 진입 초창기라 지사 사무실 인근 옥외 광고판에 핀뚸뚸 광고가 도배되어 광고 CM송을 외울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2018년에 중국에 부임하여 오프라인 쇼핑몰을 돌아다니거나 타오바오, 징둥, 핀뚸뚸등 전자상거래 업체 App을 들어가 보면서 중국 제조업의 어마무시함과 그 특징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 중국의 왠만한 산업(특히 제조업)은 완전경쟁 시장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어떤 제품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2~3개, 많아야 5~6개 정도일텐데 중국에서는 어떤 제품을 사려면 (예를 들어 라면, 치약 혹은 생수등) 스크롤이 끝도 없이 내려간다. 인구가 많고 시장이 커서일 텐데 그 만큼 시장에 참여하는 공급 업체도 셀 수 없이 많다. 공급 업체 입장에서는 생존하기가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 수많은 공급업체가 존재하다 보니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가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중국 업체들이라고 왜 품질과 브랜드를 높이고 그에 걸맞는 가격을 받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워낙 경쟁자들이 많다보니 가격이 높으면 아예 눈에 띄기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살인적인 원가 절감이 필요하고 품질관리나 A/S망을 구축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중국 제품에서 느끼는 '싸구려' 이미지는 이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품질도 품질이지만, 특히 A/S가 심각하다. 중국에서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면서 A/S를 제대로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B2B제품이든 B2C제품이든 '팔고 나면 그만'인 비즈니스 매너는 위와 같은 터프한 시장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의 역사적인 상거래 문화인지가 궁금할 정도다. 따라서 품질과 A/S가 중요한 제품이라면 나는 브랜드 없는 중국제품을 구매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남은 회사들, 거기에 강력한 브랜드까지 구축한 업체들은 정말 대단한 경쟁력을 갖춘 회사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생수의 농푸산취엔(农夫山泉), 외식업계의 하이디라오(海底捞), 가전제품 샤오미(小米), 메이디(美的) 및 거리(格力) 같은 회사들이나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B2B영역의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사 BOE, 자동차의 Geely나 BYD 같은 회사들 말이다.
  • 게다가, 중국을 넘어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드론의 DJI, 5G통신장비 화웨이, 전동모빌리티 업체 Ninebot같은 회사들인데 그냥 기술력으로 넘사벽이 된 경우다. 이런 업체들은 중국 최고의 인재들을 흡수하고 있으며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위상과 시장점유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품질과 A/S이슈는 이런 업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 IT플랫폼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소수의 업체들에게 과점되어 있다. 제조업은 완전경쟁시장이고, IT플랫폼 업체들은 독점 혹은 과점된 형태로 운영되는 형태다. 원래 플랫폼 비즈니스가 독점 혹은 과점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IT플랫폼 등 서비스 영역은 잘 알지 못해서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경쟁력을 가진 제조업체들처럼 이 업체들도 높은 보상과 대우를 주고 중국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알리와 TEMU의 현재와 같은 폭발적인 인기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보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알리와 TEMU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의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품질과 A/S 상관없는 제품이나 가성비 제품은 알리와 TEMU에서 사고 나머지 제품은 기존과 같이 쿠팡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는 형태로 소비 형태가 머지 않아 다시 자리잡을 거라고 생각한다. 쿠팡에서도 쿠팡차이나를 통해 로켓직구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하고 있었다. 쿠팡MD를 통한 쿠팡의 직구라면 아무래도 품질과 A/S 불안이 상당히 감소할 테니, 이런 것들은 비교적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알리와 TEMU가 한국의 제조 유통 시장을 모두 장악할 거라는 염려는 조금 과장될 수 있다. 단지, 정부에서 저작권 관련된 이슈나 안전과 관련된 KC인증 등 바로 잡아야 될 직구 관련 규제나 법령을 잘 정비해서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환경을 만드는 정도만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내 산업적으로는, 저런 저렴한 물건의 공습에 대응하는 것보다 세계적으로 계속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중국의 강자들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가 더 어려운 숙제가 아닌가 싶다. 모범답안이라면, 지속적인 기술 및 연구개발로 비가격 경쟁력과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것일텐데...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국 업체들의 취약한 점이 현지화라고 생각한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 해당 국가에 맞춰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하고 A/S망을 촘촘히 뿌리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은 14억 인구의 중국 시장이 아닌 많아야 수천만명 수준의 개별 국가에 일일이 비용을 써서 제품 커스터마이징하고 A/S망을 구축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을 꽤 많이 경험하였다. 중국 업체들이 큰 중국 시장의 힘을 빌려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장점이고 개별 국가에 맞춘 해외진출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단점이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진출하는 개별국가에 잘 뿌리내리 수 있도록 현지화 전략을 촘촘히 잘 세워 현지 고객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