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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온 몸으로 느낀다는 것,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영어 제목이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다. 제목의 말 맛은 한국어(아마 일본어일 듯)보다 영어 제목이 더 착 붙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원래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단편집 제목이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인데, 이 책 제목의 원형으로 쓸 수 있도록 작가의 부인에게 요청을 하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카페 정리 후 전업 소설가가 되고 나서 '닫힌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매일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전에 자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조금만 방심하면 살이 찌는 체질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거의 매일 .. 더보기
세상 어려운 만점 따내기 -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이 소설의 재미짐에 비해 너무 제목이 노골적이다. 라니... 언뜻 보면 소설이 아니라 자기개발서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한글 제목인 보다는 영문 제목인 가 더 멋들어진 느낌이긴 하다. 중앙 장편 문학상 수상 후 작가의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면 이 소설이 아무래도 자전적인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은 토익 600점도 되지 않은 채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자 토익 만점을 따기 위해 호주로 떠나고, 작가는 회사를 그만두고(아무래도 신문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3년간 이 작품을 집필한 거 같다. 직장이라는 조직에 적을 두지 않은 채 고독한 소설 집필에 매달리는 저자와 토익 만점을 받기 위한 절실한 마음으로 호주로 떠나는 주인공이 적지 않게 .. 더보기
내 삶 속에 찾아온 이야기들 - 김훈, '저만치 혼자서' 많은 사람들이 , , 등 김훈 선생의 역사 기반 소설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말 김훈 선생의 팬이라면, 그래서 김훈 선생의 신간을 놓치지 않고 읽는 독자라면 선생님의 역사물 못지않게 현대물, 특히 단편소설의 매력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긴, 단편소설 못지 않게 에세이도 감동적이긴 하다. 역사 소설이나 현대 소설이나 김훈 선생의 공통적인 특징은 정말 디테일한 ‘취재'를 기반하여 작품을 끌고 나가는데 있다. 예전 어떤 인터뷰에서 김훈 선생은 본인이 직접 보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은 것들은 감히 글로 담을 수 없다고 하셨다. 아울러, 그래서 이데올로기나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구름 위의 어떤 사상, 신념 같은 것은 다루기를 꺼리고, 오직 현실에 발딛고 있는 각 개별 인간의 군상들에 주로 관심을 둔다고 .. 더보기
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문명과 야만의 조각 -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사람이 동물에서 인간 모습을 점점 더 갖추어갈 즈음 오래 전 어느 때, 태초라고 부를 정도의 원시의 세계에서 유목 생활에 근거한 '초'나라와 농경 문화의 '단'나라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역사로 보자면 고조선보다도 이전 시대, 인간이 문명화되고 있는 시기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말, 말과 말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묘사하였다. 이미 상상력의 규모가 SF수준인 스케일의 신화적 작품이라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다만 중국 농경 민족이나 우리나라가, 북방 유목 민족과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던 경험과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대략 그 시대의 대립에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훈 선생님의 섬세하고 강인한 풍경묘사와 그 사실적인 묘사가 서사로 이어지는 힘을 무.. 더보기
포수, 무직, 담배팔이 - 김훈, '하얼빈'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 주었다. (중략...)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중략...)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밥벌이를 하는 틈틈이 자료와 기록들을 찾아보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의 족적을 찾아서 일본의 여러 곳을 들여.. 더보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 '불편한 편의점' 김훈, 김영하의 작품을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에 읽은 한국 소설이었다. 우연히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 코너에 갔는데 관심이 가서 검색해 보니 거의 수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5위권 안에서 벗어나지 않아 꾸준히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보였다. 느낌은, 요즘 트렌드를 잘 반영한 잘 만든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지만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감각적이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편의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각 챕터별로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묘사해 갔던 것도 그렇고, 현 시대에 각자 가지고 있을 법한 고민들을 나름 따뜻하게 그려낸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간 때문인지 2편도 나왔는데 이 또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시즌 2를 연상하게.. 더보기
유한한 존재로서 나 - 김영하, '작별인사' SF물이다. 사람과 거의 똑같은 로봇(휴머노이드)이 스스로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하 작품이니까 별 생각도 하지 않고 구입했는데, SF물보다 역사물이나 현대극등 사실주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던게 사실이었다. 인간과 닮은 로봇이라는 소재는 꽤 많이 여러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고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장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텐데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구체성이 꽤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과 로봇의 공학적 차이보다는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현실 - 죽음 - 과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 더보기
원하지 않는 유목의 삶 - '바리데기' '노마드', '노마디즘'이란 말이 얼마전까지 유행하고 있었다.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경기침체로 모든 어젠다를 집어 삼킨 블랙홀의 계절이지만, '노마디즘'이란 꽤 강력한 힘을 가지고 떠돌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유목주의'라고 불 수 있는데 어느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 용어는 긍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좁은 한 국가, 민족,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문화와 지역의 좋은 점을 취하고 적응력을 키워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해 나가자는 의미 한편,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이곳저곳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는 슬픈 역사와 운명의 여운도 남아있다. 소설 '바리데기'는 세계사적인 슬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