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學과 藝術의 뜰

邊競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의 여행 - '하루키의 여행법'

예전에 어떤 친구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김훈의 여행기는 여행기가 아니야. 여행 에세이지. 유홍준교수의 여행기는 읽으면 그 여행기를 따라 가고 싶게 하지만 김훈의 글을 읽으면 그런 마음 따위보단, 그냥 그가 여행지에서 느낀 그 감성과 문장 속에 빨려가게 된다구.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흥분, 혹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야 여행기 아니겠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시리즈를 제대로 읽지 않아 유홍준 교수가 어떻게 여행기를 쓰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전거 여행>을 읽으면서는 그 친구 말에 대강 공감할 수 있었다. 김훈은 여행지에서 보는 사물, 풍경에 주관성이 너무 짙어 독자를 빨려들게 한다. 매력적인 문장과 함께. 대부분의 명문장가가 그렇듯이 김훈의 문장은 한 줄도 허투루 쓰는 말이 없다. 한줄 한줄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계속 긴장해야 한다. 흡입력이 그렇다는 얘기다. 확실히 그런 이가 쓰는 여행에서의 글이란, 객관적인 거리두기가 쉽지는 않은 법이다.




하루키는 참 편안하다.

읽는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주는 문장을 쓰는 자인데, 혹자는 그걸 두고 대중성이 짙다고 하는 듯하다. '대중성이 짙다'는게 칭찬인지 힐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평론가가 대중성을 수준높은 글을 위해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서 - 적어도 한국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 호의적인 표현은 아닌 듯하다. 하루키가 대문장가(大文章家)인지 아닌지 아마추어인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난 좋다. 특히,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 이 감수성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상실의 시대>나 <태엽감는 새>는 워낙 어릴 때 봐서 감흥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최근 본 단편집을 보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하루키의 진가는, 때때로 에세이에서 드러난다.

블로그가 일상화된 인터넷 시대에서 하루키 에세이 문장은 블로그에서 꽤 많이, 아마도 톱 수준의, 인용과 펌질을 당하는 글일 것이다. 성석제가 왁자지껄 떠드는 수다스러운 이야기 꾼이라면 아마 하루키는 조용조용 나긋하게 말하는 섬세함이 제격이다. 소설과 다른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수성이란 거. 조금 나른하고 피로한 듯 한 느낌.


서문에 적은 대로, 이 책은 주로 邊競의 여행에 대해 썼다. 여기서는 잠깐 서문을 인용한다.


오늘날은 여행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쓰고 나아가 여행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정말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해외 여행이란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려고 생각만 하면, 즉 그럴 마음이 있고, 거기 드는 비용이 준비되기만 하면 대충 세계 어느 나라라도 갈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정글에도 갈 수 있고, 남극에도 갈 수 있다. 단체 여행도 물론 가능하다.

그래서 여행에 관해서라면, 설사 아무리 먼 벽지에 가더라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먼저 머리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 같은 것은 배제하고,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여행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현대의 여행기는 시작되어야만 한다. "잠시 어디 좀 갔다 오겠네"하는 것은 좀 극단적이겠지만...... "눈을 부릅뜨고 결의를 새롭게"하는 느낌이라면 읽는 쪽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미국 대륙을 자동차로 횡단하는 것과, 시코쿠에서 사흘 내내 하루 세 끼를 오로지 우동만 계속 먹어대는 것 중 도대체 어느 쪽이 변경(邊競)인지 잘 모르겠다. 참 어려운 시대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쉽게 오고가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하기 싫었는지, 아님 그런 얘기는 담을 게 없어선지 꽤 흥미로운 여행에 대한 기록을 모아놨다. 물론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호주의 해변이라든지 홍콩의 밤거리, 뉴욕의 아침, 교토의 고즉넉함을 다 익히 경험해 보았음직 하다. 그러나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서 익히 알려져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여행지 이야기보다는 쉽게 경혐해보기 힘들 것들을 적어 놓았다. 아마 본인으로서도 그런 것들이 기억에 더 남았으리라.

총 7개의 여행기가 있는데, '무인도 여행'처럼 짧은 것도 있고, '멕시코 대여행' 제목처럼 긴 여행기도 있으며 나름 각자 다 매력이 있다. 온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들여다보면 우리도 경험해 보았을 여행자로서의 익숙한 기억과 분명히 낮선 하루키의 발걸음이 조금씩 겹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은 그다지 요란스럽지 않지만, 그가 여행하면서 겪은 경험은 참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읽으면 일본 시코쿠의 무인도나 고베의 오솔길, 멕시코 오지등을 꼭 가보고 싶어진다. 흥미진진하지 않은 문체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겨 있는 것이 이 책의 묘미!

(미디어몹 : 2007/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