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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부러져버린 칼이 되어버린 詩 - 이문열 '시인과 도둑'





이문열이 똑똑하고, 치열한 고민과 반성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자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의 보수적인 성향이나 이념편향은 수없이 많은 개인적 체험과 정치적 체화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은 호불호를 떠나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강인함이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이 그는 현실정치와 체계, 이념을 일상적인 것, 혹은 비유할 수 있는 상황에 대입시켜 풀어나가는 방식을 즐겨 쓴다. '시인과 도둑'은 억압된 환경의 교실에서 파시즘과 그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국면을 그려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아주 매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사회변혁과 그의 도구로서의 예술의 관계를 '시인'과 '산채주인 - 혁명가'를 두고 꽤 나름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같은 변혁의 이름으로서, 작가는 사회주의 혁명과 그 도구로 쓰였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이 두 주인공과 겹쳐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문열의 매력은, 꽤 괜찮은 그의 글재주와 함께 항상 '절대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 영웅'에서 민주주의의 절대성과 그 과정에서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다면, '시인과 도둑'에서는 급진적 사회변혁(혹은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 - 그 희망의 절대성과 도구로서의 예술 - 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생산'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것이나 예술을 변혁의 도구로 삼는 것, 모두 시대는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회주의 이념이 세계를 휩쓸던 시대의 조류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이 쓰였던 시기가 1990년대에 진입하던 시기인 점을 보면 당대 지식인들 대부분 공감하던 좌파적 사고에 대해 나름 작가는 '의문'을 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문열이 그래도 다른 보수주의자들 보다 나은 점은, 그가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부정하는 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잘 알지도 못한 채 막연한 생각으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사상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문열은 그 세계를 나름 깊이 이해한 다음 온몸으로 부딪혀간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이 과격하고 어거지 같기 때문에 막연히 운동권들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던 가 하면, 학생운동에 대해서 알고 때론 그 조직을 경험했다가 싫어하게 되는 것과는 아주 깊은 인식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단지 편견일 뿐이다.

적어도 이문열은 '편견'이 적다는 면에서,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그게 이문열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이유다.


(미디어몹 : 2007/03/25)



  1. 지게 blog 2007-03-26 10:46

    짝짝짝!

    요새 글 몇 편에서 개인사에 가까운 내용을 배설하듯이 쏟아냈다고 이문열씨를 싸잡아 현학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몰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쌓이고 쌓인 밀도가 높은 사람이니까요.

    예전에 내가 만난 몇 안되는 운동권(??)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도 이문열씨가 쓰는 글 정도는 쓴다. 남들 다 아는 거 자기만 아는 것처럼 글을 쓴다며 무척 싫어하더군요. 미워하는 게 아니라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건 편견이죠.

    1. 음유시인 blog 2007-03-31 12:27

      음.. '밀도가 높다'는 말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이문열의 글 정도는 쓴다'는 아주 굉장한 수준 아닐까요? 저런 말을 쉽게 하기는 힘들텐데... 어떻든지간에 말이죠... 꽤 괜찮은 이야기꾼임은 분명합니다.

  2. 274 2007-03-27 18:28

    "끊임없이 나도는 음모설(陰謀說)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시민단체의 선의(善意)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건 편견이 아닌가요.

    1. 음유시인 blog 2007-03-31 12:20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판단과, 그의 문학작품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죠. 이문열이 한 저 말은 님의 말씀처럼 편견 같습니다.

  3. 말리 blog 2007-03-28 18:21

    헉 ㅡ.ㅡ ;; 시인과 도둑이야말로 제가 이문열의 글을 싫어하기 시작한 최초의 책인걸요... 시인과 도둑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선택에서 저는 이문열의 지독한 편견을 보았을 뿐 아니라 글쓰기를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삼는 하나의 유형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걸요... 이걸 가지고 또 언제 한번 이야기 할 기회가 있다면 스파게티가 입에서 튀어나와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군요 ㅎㅎ

    1. 음유시인 blog 2007-03-31 12:22

      누구나 생각은 있습니다. '편견'이란 닫혀있는 생각 아닐까요? 그 '닫힘'도 어느 정도는 주관성이 있을 겁니다. 이문열의 글쓰기가 편견을 정당화시키는 도구일 수도 있지만, 모든 글에는 작자의 생각이 담겨있기 마련이죠.

      이문열의 사고를 '편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글이 '편견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이문열의 사고가 '편견'이라....

      저는 '편견'보다는 호불호의 입장이 아닐까요? 공병호는 지대로 편견쟁이지만, 이문열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4. 지게 blog 2007-03-30 02:30

    이문열씨 초기 글들(단편)을 참 좋아한 사람인데 지금은 욕 먹을만한 모습이 꽤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까놓고 말해서" 개혁 세력의 선언 뒤에 있는 아린 현실(이문열씨의 왜곡된 눈 혹은 패배주의 시각으로 본 걸지는 몰라도)을 아주 오래 전부터 이문열씨가 글을 통해 은근히 건드렸고 이게 상당한 반대세력을 불러왔다고 봅니다.

    문학에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 개혁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던 시절 차라리 이문열씨의 글들이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 혹은 현실에 가깝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1. 음유시인 blog 2007-04-08 10:42

      지게님의 말처럼 이문열은 혁명과 변혁에 대해 아주 일찍부터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이문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의 패배주의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치사하고 비겁할 수 있지만, 혁명과 변혁에 중립적인 저는 그냥 그 사람의 글이 담담하게 받아지던걸요??

      '그래'도 아니지만, '저건 아니야'도 아닌 어정쩡함... 그래서 그냥 그의 글재주에 의존해 책을 읽습니다.

  5. 허튼가락 blog 2007-04-07 18:3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특히 그의 글재주에 의존해 책을 읽는 다는 말은 저에게도 무척 와닿는 부분입니다.

    이문열 이야기에서 해도 될 말인지 자신은 없지만 (그의 글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지겠지요) 어느 책에서 읽은 글처럼 영웅을 못가져서 불행한 나라가 아니고 영웅을 필요로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초반 그의 단편이 보여주었던 개인과 집단에 대한 통찰에는 아직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 부분도 정치적인 잣대로 재단한다면 할말이 없지만은...)

    1. 음유시인 blog 2007-04-08 10:41

      '영웅을 못가져서 불행한 나라가 아니고 영웅을 필요로 해서 불행한 것'이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린 나이에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왜 이문열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원래 인간들이란,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란 다들 그렇고 그런거야...'식의 무언가에 조금씩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제 27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러면 조로(早老)한 걸까요?

  6. lifesavers blog 2007-04-08 11:54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문열을 타락한 보수 문학가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는데, 그를 말하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책 몇 권 정도는 읽어 봤어야 됐네요. :) -alright

    1. 음유시인 blog 2007-04-08 13:52

      타락한 사람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문열의 작품의 보수성은 비교적 일관된 것이었지요. 초기엔 잘 드러내지 않았다가 최근에 두드러져 보일 뿐.

      이문열 소설은 정말 재밌습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시다면 거슬리는 부분도 꽤 있겠지만, 재밌는 소설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저는 그의 현학성이 좀 맘에 들지 않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