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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Style

매일, 피식 수줍게 웃는다


위의 만화처럼 정말 애틋한 것은 아니고,

사랑에 실패하고 요즘 생활이 그렇다는 거다.

혹 짐작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다. 혹자는 취업준비생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혹은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한다. 내 하루 일과는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렇다.

아침 7시 30분 기상. 간단한 아침과 샤워. 학교 도서관으로 직행.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등교 & 체크인. 죽~ 계속 도서관 안 혹은 밖에서 뭔가를 함. 저녁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귀가. 10시부터 11시까지 TV보며 헬스. 11시부터 12시까지 샤워, 컴터, TV시청. 12시에 시작하는 재즈를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라디오를 들으며 취침. - 재즈도 요즘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다, 으윽. 그리고 다시 7시 30분 기상.

누가 봐도 건조하기 짝이없는 생활이긴 한데, 낙천적이기 짝이없는 나는 나름 행복하게 보낸다. 아,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을 찾았다.


1.

내가 가는 열람실은 완전 개방형이라, 칸막이가 없다.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다 볼 수 있음. 항상 앉는 자리가 있는데 한 일주일 전부터 어떤 여인내가 내 앞에 옆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주로 교육학과 영어책을 보는 거 보니 영어교육과인 듯 하다. 공부를 하도 집중해서 하길래, '참 성실한 사람인가보다'하는데 볼수록 왠지 삘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앞가림도 바쁜 처지라 그냥 그려려니하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그마한 사건이 생겼다.

그저께 점심먹고 엎드려자고 있는데 왠 핸드폰 진동이 책상을 뚜드리고 있었다. 윽! 뭐야? 하고 부스스 일어나보니 그녀의 핸폰이 울리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듯 했다. 주위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뭔가 어떻게 좀 해보라는 눈치다.

다른 사람의 핸펀을 함부로 만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울리는 걸 내버려두는 것도 민폐고 해서 주저주저하고 있다가, 에잇! 그냥 슬라이드 올렸다 내려버렸다. 다시 잠잠해지고 사람들의 눈은 다시 책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몸, 어찌 쉽게 다시 책으로 눈을 꽂으리오~

뭔가 '하느님이 나에게 준 기회가 아닐까? 그냥 시침미때고 가만히 있는게 좋을까? 그래도 자연스럽게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는 아닐까?' 오만 생각 다 하다가 그냥 가만 있으면 하늘이 준 기회를 버리는 것 같았다. 헉, 저쪽에서 그녀가 걸어왔다.

타이밍 맞게 "저... 아까 핸펀 울리길래 제가 그냥 받고 닫아버렸어요"라고 말했다. 항상 인상쓰며 공부하던 그녀는 "아, 그래요? 정말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게 아닌가? 우악! 역시 웃으면 누구나 100배는 이뻐보인다.

다시 신경안 쓰는 척, 공부에 매진했다(?) 매진하려고 했다(?) 매진하는 척 했다.
과외갈 시간이 되어 이제 자리를 떠나야 할 시간. 그녀는 아직 공부중. 그냥 아까 한마디만 하는 게 아쉬워 가기전에 뭐라고 말할까 하다가

"친구분이 기분나빠하지 않아요? 누가 받았다 바로 끊어버리면 좀 그렇잖아요"라고 말했다. 사실 전혀 필요없는 얘기긴하다. 그러나 웬지 한번 더 말 걸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아니요. 전혀요. 정말 죄송합니다"면서 공손하게 머리까지 숙여가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름 미소를 던지며 "뭘 별 말씀을... 그럼"이라고 말하고 유유히 떠났다. 뭔가 해냈다는 전혀 근거없는 생각에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역시 어제도 그녀는 내 앞에 옆 옆 자리에 앉았다. 점심먹으려 나가려는데 들어온 것이다. 식사하고 오니 역시 그녀는 열공 중. 뭔가 후속타가 필요하다 싶어서 쪽지에다 조그맣게 "안녕하세요. 공부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좀있다 편의점가는데 음료수 사다줄까요? 아! 저는 어제 앞에 옆에 앉아있던 사람입니다. ^.^"라고 썼다. 다시 잠시 그녀가 자리비운 사이 책 사이에 두고 오려고 했던 것이다.

쪽지를 놓고 오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젠장 아예 가방을 싸고 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크흑! 젠장. 오늘은 왜 이리 일찍 가지???? 내 수줍은 쪽지는 결국 버려지고 말았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해서 학교가기 싫었는데 이제는 아주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갈 거 같다.



2.

이번엔 헬스장 얘기다.

보름 전부터 어떤 두 여인네가 헬스장에 오기 시작했다. 한분은 평범한 분이고 다른 한분은 여자 강동원이었다. - 정말 강동원이 여자로 태어났으면 꼭 그렇게 생겼겠다 싶었다. 강동원 쫌 재수없어 했지만 여자 강동원분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냥 별 생각없이 열심히 러닝머신에서 뛰다 걷다 하고 있었다. 참고로 월화요일 주몽 볼 때는 1시간 내내 머신에서 내려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시 자꾸 눈에 밟히는 건 밟히는 거다.

낯선 사람에게 말거는 것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 뻔치좋은 나는 말이라도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그 시간대에 운동하는 분은 퇴근한 후 아저씨거나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감당하는 아주머니분이 대부분. 젊은 사람끼리 알고 지내는 것이 뭐 대수랴.

사실 어떻게 작업 걸려고 한건 아니니... 쩝, anyway

아참, 나만의 오버일 수도 있지만 항상 마지막에 그 두분과 나만 남는다. 주몽이 꼭 11시 5분 정도 넘어서 끝나는데 그 때 나갈 준비를 하면 두 여인네만 남아있는게 아닌가. 처음엔 별 생각없이 지내다가 그게 하루이틀 쌓이니 - 난 거의 매일 핼스를 간다. - 왠지 더 관심이 갔다.


아마 이번주 월요일이었을 거다. 다 끝나고 나갈 때 처음으로 말을 걸어봤다.

"아, 두분이 친구분이세요?"
"네" - 갑자기 돌아서 씩 웃는데 귀여웠다.
"좋겠네요. 같은 동네에 친구랑 같이 지내면서 운동도 하고"

정말 시덥잖지 않은가? 그날은 그냥 그렇게 뭔가 물고를 트고 귀가했다.

그 다음날

역시 주몽이 끝날 때 나오고 그녀 역시 나갈 준비를 하는데, 헬스장 아저씨에게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하고 그 쪽을 향해서도 "수고하셨어요"라고 친절히, 상냥하게 말했다.

그 여자강동원양도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말했다.

으흐~


그 다음날 - 이날이 쫌 중요하다. 수요일이다.
수요일은 주로 '돌아와요 순애씨'를 보며 뛰는데, 주몽처럼 열심히 보지는 않는다. 아령도 들도 프레스도 하고 하다가 강동원분 옆 러닝이 비었다. 빙고!

나름 자연스럽게 올라갔는데 그녀도 순애씨를 보고 있었다.
순애와 초희가 다시 바뀐척 하는 부분이었다. 다 짐작가는 내용이지만 그냥 "저 두사람 바뀐척 하는거죠?"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예"하고 짧게 대답한 다음 그냥 뛰더라.

아~ 조낸 머쓱했다.

anyway 다시 뛰는데, 그녀가 조금 뛰다가 내려갔다. 난 '뭐 다른 거 하러 갔겠거니'하고 그냥 열심히 뛰었다. 한참 뛰고 프레스하러 내려오는데, 그녀는 자기 친구 옆에서 러닝 뛰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 쉬펠~

웬지 기분이 나빠서 그날은 11시까지 안 채우고 10시 50분에 그냥 집에 가버렸다.


그 다음날 - 목요일

과외 끝나면 10시, 집에 오면 10시 반이라 갈까말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헬스장에 가봤다.
근데 그 두분은 보이지 않았다. 또 쉬펠~


그 다음날 - 금요일

10시 딱 맞춰 다시 갔더니 이번엔 그 두 여인네가 뛰고 있었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러닝을 마구 뛰었다. 요즘 B-Boy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KBSSKY에서 하는 비보이들을 보고 있었다. 옆에 그녀들은 쇼프로그램보면서 미친듯이 웃고 있었다. 뭐 재밌나?

11시. 또 마지막에 그녀들과 나만 남았다.

나가면서, "어제는 안오셨나 봐요?"라고 말하자 "어제 왔는데요"라고 하더군. 일찍 갔나? 맨날 11시까지 하면서 어제는 왜 일찍 간거야? -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냥 "수고하셨어요"라고 내 유일한 무기인 웃음띤 얼굴로 인사했다. 그리고 나왔다.



3.


역시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진짜 시덥지 않은 얘기다.

나도 사실 시덥지 않게 그냥 지내는 거고. 그래도 사막같은 내 일상에 눈꼽만큼이라도 비를 뿌려주시니 참 고맙다. 약간 기분좋은 갈등, 그런거라도 없으면 얼마나 건조할까?


두 분. 그냥 거기 계셔주기만 해도 참 힘이 됩니다. 도서관, 헬스장 꼭 나와주세요!
고맙습니다.  ^.^

(미디어몹 : 2006/08/26)



  1. 하늬 blog 2006-08-26 11:08

    오호..
    혹시 그녀가 일부러 밖에 나가서 공중전화로 자신의 핸펀에 전화를 건 것일지도? ^^?

    1. 매닉스 blog 2006-08-26 11:17

      헐헐헐. 혹시 하늬님이 구사하는 100가지 작전중 하나?

    2. 음유시인 blog 2006-08-26 11:30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을 해 보려고 해도 그건 아닌 듯합니다. ㅎㅎㅎ

  2. 에오윈 2006-08-26 13:38

    아, 역시 구애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죠.

    1. 음유시인 blog 2006-08-26 13:42

      구애는 아직(?) 아니고, 그냥 그 분들은 제 삶의 청량제가 되는 분들일 뿐이죠~ 잘 되면 좋겠지만... ㅋㅋㅋ

  3. 주인장 2006-08-29 09:57

    저런, 여자 강동원분 집앞에서 우연히 봤는데, 남자친구랑 손잡고 어디 걸어가더군요~ -.-

  4. 찌돌 2006-09-16 14:37

    으하하-공부에 열중하세요 ㅋ
    뭐 그래도 활력소가 된다면야..좋아요 좋아-

    1. 음유시인 blog 2006-09-17 16:41

      으흐~ 그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