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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물


나는 '잘 나가는 친구에 대해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꼴불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우리 주위에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내 친구는 OO대 나와서 지금 어디 OO에 일하고, 또 고등학교 동기놈은 OO대 OO과 나와서 행시 패스해 얼마 후 연수원 들어간다' 등등의 얘기를 쉴새 없이 늘어놓는 사람 말이다.

얘기하다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그런 부연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잘 나간다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는 일종의 자랑이 습관이된 경우가 많다. 그런게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나도 점점 이런 식의 묘사에 익숙해져간다는 거다.

친구가 '야, 역시 공무원, 교사가 대세야 대세'라고 말하면, 내가 '야야, 얼마 전에 OO에 들어간 친구가 그러는데, 나름대로 직장생활도 재밌고 로망도 있대'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대기업 OO회사라는 수식어나 부연설명은 사실 그다지 필요한 건 아니다.

내가 다녔던 일어회화학원에 70먹은 할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를 할 때도 사실 '퇴직하신 듯 보이는 70되신 할아버지와 함께 공부한다'고 얘기하면 되는데, 굳이 '맏딸이 40대 명지대 교수라고 하는 70되신 할아버지와 공부한다'라고 말한다.

사회에 대비함ㆍ적응함, 동시에 얼마간 물들어가는 느낌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요즘, 어느 정도 '외양'과 '이름'이 뭔가 이루고자 할 때 꽤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꼴불견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침투해 습관이 되려는 걸 느끼고 두려워졌다.

으음... 경계경보를 발령해야겠다. 역시 가장 무서운 건 습관이다.

(미디어몹 : 2006/02/25)


  1. 말리 blog 2006-02-26 11:18

    첨 넷질을 시작할 때 참 좋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몇 살인지, 뭐 하는지, 가방끈이 얼마나 긴지 기타 등등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글을 쓸 때 가능하면 개인적인 부분은 잘 밝히지 않았습니다. 처음 가입한 사이트가 당시에는 나름대로 공적인 사이트였고 사적 교류 없이도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할 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차츰 차츰 사적으로 변질되서 굳이 캐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되고 또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부분들까지 어째 저째 서로 알게 되고 그러면서 오히려 조금씩 불편한 부분도 늘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그 사이트엔 잘 가지도 않지만...
    옛날에 단체 여행을 10박11일 갔다 온 적이 있거든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근력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 뻘이라고 해야할 텐데요. 여튼 거기서 첫날 돌아가면서 인사라는 걸 했는데 어떤 할머니가 일어서더니 그러는 거예요. 저는 이대 ^^과를 나와서 어쩌고 저쩌고..... 그 순간 나이 가장 어리던 저는 웃기고 또 황당해서 죽을 것 같았습지요. 아니 그 자리에서 옛날에 이대 나왔다는 이력이 왜 나오느냐 말입니까 흙흙... 근데 나도 한 이십년 더 지나면 그렇게 될까욧 ㅠ.ㅠ.....

    1. 음유시인 blog 2006-02-26 17:04

      음... 공통적으로 제가 언급한 위의 '성격', 혹은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Therefore, 자기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 뭘 하든 떳떳하고 당당하고 자신있다면, 뭘하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그 따위 것들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아, 그래도 나이 들어 이제 더 이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은 분들 중에선, 예전에 자신이 '어땠다'는 걸 굳이 밝히고 뿌듯해 하는 듯 하여이다. 그건 또 그런데로... 그렇구나.... 하는 거죠, 뭐. 역시 저도 그렇게 될지 모르니까요.
      어쨌든 지금 저는 그런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서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잘 해 봐야죠~ ^.^

  2. adnoctum 2006-02-27 13:01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위에 분노를 느낄 때에는 즉시 그대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 보라. 그리고 자신도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 -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10-30.

    포스트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내면에 대해 그만큼 깨어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1. 음유시인 blog 2006-02-27 20:25

      음... 깨어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지만... ^.^
      그렇다기 보다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겠죠~

  3. 써머즈 2006-03-01 02:44

    '그 잘나가는 사람들' 하니까 골방환상곡의 '엄마 친구 아들'이 생각나네요. ^^
    예, 저 역시 필요없는 수식어들을 조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1. 음유시인 blog 2006-03-01 08:45

      아, 저도 그 만화 봤습죠~! ㅎㅎㅎ 활활 타오르는 그 모습이란, 엄청난 포스를 발휘하던. ^.^ 완전 드래곤볼의 손오공이었음~!

  4. 정말 2006-03-04 13:48

    나쁜 습관은 어찌 이리 쉽게 몸에 배는지 항상 깨어있으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깨어 있으시길 바랍니다. ^_^

    1. 음유시인 blog 2006-03-07 00:41

      그러게요.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배는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참 좋은 말이지만, 결코 쉽지않은 일이죠.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