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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닫는데로/viSit Kingdom

사건 사고 소식

내가 '이제 여행에 모험의식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하늘의 계신 누군가가 심술을 부린 모양이다. 지금까지 어떤 여행보다 가장 짜릿한 경험을 했으니 말이다.

- 조금은 긴 이야기 -


Oxford에서 런던에 도착해 짐 보관소에다가 배낭을 맡기고 런던을 조금 더 둘러보려고 Victoria역을 나섰다. 한국 음식을 못 먹어본지 4일째, 첫날 같던 차이나 타운의 한국 음식점에서 설렁탕으로 끼니를 때우고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 책자를 구입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다리가 아파 카페에 앉아 있었다. 커피라도 한잔 할까 하고 가방을 열었는데, 아뿔싸! 지갑이 없어졌다!






분명히 안내 책자를 살 때 지갑을 열었으니 박물관에서 잃어버린 것은 분명한데, 과연 어디로 갔을까? 거의 한시간 동안 내 동선을 거슬러 올라 대영박물관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박물관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분실물 센터에 가 보고 직원을 통해 신용카드 분실 절차도 밟았다. 젠장, VISA카드사에서 내 신용카드 번호를 대라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한국 대사관을 통해 국민은행 런던지점과 연결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 런던에서 잃어버린 국민카드 분실신고를 국민은행 런던지점에서 할 수 없어싸. 저들도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것일까? 아주 친절한동시에 어리버리대더니만 서울로 직접 통화하는 방법밖엔 없단다.

대한민국 1등을 뛰어넘겠다는 세계 100위안에 드는 회사 KB국민은행에 실망하고 말았다.

어쨌든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고 나니 나게 남은 건 여권과 항공권, 카메라 뿐. 어떻게 짐 보관소에 갈 것이며 공항은 어찌 갈 것인가... 가슴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앵벌이 뿐!

여권에 명함을 앞 뒤로 한장씩 꽂아 두었는데 하나는 박물관 직원 주고 하나 남은 명함을 품고 선량해 보이는 우리 조선 동포를 찾아 나섰다. 아 맑고 착하고 순수한 여대생으로 보이는 분을 발견해 자초지종을 말하고 10파운드를 빌려달라고 했다. 아아- 심지어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도 떨렸는데, 어쩌리오- 그 순수녀께서는 딱하다며 10파운드를 빌려주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명함을 꼭 쥐어주었다. 서울에서 반드시 사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을 빠져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하나? 내게 남은 지상 최대의 과제는 무사하고 안전히 이 섬을 뜨는 것이다.






하염없이 거닐다가 우선 아까 점심 때 들렀던 한국식당에 갔다. 안면 터놓았던 아주머니께 부탁해 서울로 전화해서 국민카드 분실신고를 하려고 했다. 아주머니는 안 계시고 알바하는 한국인 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도움으로 신용카드 정지신청은 되었다. 완전 다행!

그 다음 코스는 맡긴 짐을 찾는 것이다. Victoria역에 있는 짐 보관소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지갑에 짐 보관 영수증이 없으면 15파운드를 벌금으로 내란다. 세상에-- 공항가는 차비가 없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얻는 판국에 어찌 15파운드를 내겠는가? 아니면 경찰서에서 Report를 받아오란다. 여기서부터 또 기나긴 여정의 시작

머나먼 플렛폼1에 가서 경찰을 부르는 전화를 하고 10분 정도 있으니 왠 어리버리한 경찰 아저씨가 다가왔다. 역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대영박물관에서 잃어버린 것은 자기가 어찌할 수 없단다. 그러니 Metropolitan 경찰서에 문의하란다.







어찌어찌 물어물어 Metropolitan 경찰서에 도착했더니 다행히 분실물 보고서를 끊어 주었고, 맡긴 짐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뒤도 안돌아보고 Heathrow공항으로 이동, 다행히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게 되었다.

(미디어몹 : 200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