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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디즈니만이 하는 것 - 'The ride of a Lifetime'

 이 책의 서문은 상하이 디즈니랜드 개장 전 일주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려 60억 달러의 건설 비용과 18년의 준비기간에 걸쳐 2016년 6월 상하이 디즈니 랜드는 개장하게 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100년 역사상 거대한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 사이에 놓인 이 프로젝트의 개막 행사 며칠 전,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2km 떨어진 나이트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고, 개장 하루 전날 악어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이 두 사건을 CEO이자 저자인 밥 아이거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고 있었는지를 묘사하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경영사, 혹은 성공한 기업인의 자서전의 서막을 열어가는데 있어 큰 행사 전 CEO로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며 이 책의 서막은 열린다.

 다른 기업사, 혹은 기업인의 자서전 등과 달리 이 책은 창업자에 관한 책은 아니다. 로버트 아이거는 말단 사원부터 CEO에 오른 케이스로 한번의 이직도 없이 한 회사에서 최고경영자에 오른 특히, 미국에서는 드문 케이스에 가깝다. 다만, 그가 입사한 ABC(공중파 방송국)가 여러 인수 합병을 하고, 디즈니에 인수도 당하며 그가 CEO에 오른 뒤 인수합병을 많이 하기도 하면서 커리어 내내 변화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전반부(Part 1. Learning)는 ABC의 말단 사원으로 입사하며 많은 선배, 동료들과 어떻게 지내고 업무를 익히고 성장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디즈니의 가족이 될 수 있었는지의 여정이 나오고 후반부(Part 2. Leading)은 디즈니의 CEO가 되고 나서 어떻게 조직을 혁신하고 인수합병을 성공시켰는지를 주고 다루고 있다. 나는 특히 이 책 전반부에서 밥 아이거가 여러 본받을 만한 보스들에게서 어떤 점을 배우고 이를 스스로에게 체화시키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너무 좋았다.

 'ABC스포츠에서는 룬의 힐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리스크를 감수를 회피하거나 너무 무모한 짓을 벌이곤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도 이해되었다. 룬은 변덕스러운 상사였다. 상사의 변덕은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의 사기에 큰 타격을 준다. 그런 상사는 당신이 부서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가 갑자기 비난을 퍼부으면 기를 죽일 수도 있고, 분명치 않은 이유로 당신의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 룬은 또한 직원들이 서로 경쟁하고 논쟁을 벌이도록 유도하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의도적인 전략인지 그저 그의 성격 탓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엄청난 재능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룬은 마음이 불안정했으며, 그런 불안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장했다. 직원들은 종종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기도 했다. 나름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는 나를 미칠 지경으로 몰아붙여 퇴사를 결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직원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 (중략) ... 나는 나중에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비로소, 우리가 성취한 많은 것들 중 상당수는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룬의 '완벽 추구'에 동기를 부여받았고, 이후 그것을 나의 신고로 삼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다른 것도 배웠다. '탁월함excellence과 공정함fairness은 서로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 page 65 ~ 66

 Part 2는 밥 아이거가 디즈니의 CEO가 되고 나서 여러 일들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회사의 비전을 3가지(a; 고품질의 브랜드 콘텐츠를 창출하는데 회사가 보유한 시간과 자본의 대부분을 쏟는다. b; 가능한 최대한의 범위로 신기술을 수용한다. c;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한다)로 세우고 그 비전에 따라 움직이는 것, 중앙집권적인 전략기획실을 최소화하고 단 사업 단위별로 빠르게 의사결정하도록 변화하는 것, 이 두 가지로 조직을 혁신하고, 대외적으로 큰 인수 합병을 추진한 것이 디즈니 CEO로서 밥 아이거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인수합병과 관련된 배경과 과정, 스티브 잡스와 같은 경영계의 또다른 수퍼스타와 어떻게 지냈는지가 이 책의 후반부를 이끄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의 CEO로서 스티브잡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데 픽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밥 아이거가 픽사 인수 전 스티브잡스의 권유로 픽사 사무실에 가서 회사를 둘러본 후, 얼마나 픽사에 푹 빠져 들었는지를 묘사하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존이 먼저 나섰다. 그는 나를 위해 사실상 최종 편집본이라 할 수 있는 '카'를 상영했다. 나는 사내 상영관에 앉아 애니메이션의 질적 수준과 그들의 마지막 작품 이후 이뤄진 기술적 진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경주용 자동차의 금속 도장 표면에 빛이 반사되는 방식을 표현한 장면에는 경외감마저 들었다. 컴퓨터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이미지들이었다. 이어서 브래드 버드가 자신이 작업중인 작품을 보여주었다. 디즈니 사람들이 멋모르고 비웃었던 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라따뚜이'였다. 픽사가 제작한 영화 중에서 가장 정교한 테마와 서사적 독창성을 보유한 작품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중략)...또한 에드와 그의 기술팀은 끊임없이 자신들만의 도구를 개발해 예술가들의 손에 쥐어주며 이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나 물, 안개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세요!" 에드는 그때까지 개발된 가장 정교한 애니메이션 도구들과 더불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최상의 형태로 구현되도록 돕는 독창적인 기술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한 음과 양의 조화가 바로 픽사의 본질이었다. 모든 것이 거기에서 흘러나왔다. 그날 늦은 오후, 픽사 본사의 주차장에서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재빨리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톰 스택스에게 전화를 걸어 LA에 도착하는 대로 찾아가겠다고 전했다. 이사회가 픽사 인수를 추진하도록 허락할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고, 스티브가 갑자기 마음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톰에게 그들의 재능과 창의적 열정의 수준, 품질에 대한 헌신, 스토리텔링의 독창성, 기술적 진보, 리더십 구조, 열정적인 협업 분위기, 심지어 픽사 본사 건물의 건축양식 등에 대해 설명했다. 창의성이 필요한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비즈니스를 하던 누구나 열망할 만한 기업문화였다. 디즈니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디즈니가 독자적으로 성취할 수는 없을 것 같았기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픽사 인수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 page 257~259

 창업자가 아닌 월급쟁이 CEO의 자서전이라는 점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나도 어쨌든 샐러리맨이니까) 그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성장했던 여정 속에서 내 경험과 반추할 수 있는 지점도 적지 않아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미가 있어 400page가 넘는 책을 이틀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