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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저주받은 마을의 문 - 옌렌커, '딩씨 마을의 꿈'

 

 할아버지 딩수이양은 딩씨 마을에서 인품과 덕망이 높은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딩후이는 부에 눈이 멀어 그 마을을 파괴시키는 장본인입니다. 소독하지 않은 주삿바늘로 피를 팔았던 딩후이의 주도로 수년 후 마을은 에이즈로 뒤덮여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그 상황을 또 다시 이용해 사람들을 돈을 긁어 모으는 악마 같은 아들을 딩수이양은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딩후이에 앙심을 품어 누군가 독을 탄 음식을 먹고 죽은 딩수이양 손자, 딩후이의 아들 딩샤오창이 이 작품의 화자입니다. 죽은 딩샤요창 입을 빌린 전지전 작가 시점으로 작품은 전개됩니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역시 매혈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지만 가족애와 휴머니즘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이 <딩씨 마을의 꿈>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절망과 고통이 안개처럼 깔려 있는 에이즈가 창궐한 마을, 그런 어려움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열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딩후이의 동생 딩량과 링링의 불륜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니까요. 딩후이는 죽은 딩샤오창마저 간질로 죽은 고위 간부의 딸과 음혼(죽은 사람끼리 결혼시켜 주는 일)해 줄 정도로 이기심과 탐욕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딩후이에게 마을 공동체가 착취되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안절부절 바라보는 딩수이양이 작품 전체의 갈등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결말 역시 통쾌하다고 하기 어려운 쓸쓸함으로 가득합니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중국 문학은 역사적으로 희극에 강한 반면 비극에 약하다고 합니다. 삶의 처절한 고통과 비애마저도 낙천적인 해학으로 소화하려는 것이 중국인과 중국 문학의 오랜 전통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 옌렌커는 중국 문학으로서는 드물게 다양한 형태의 비극과 절망, 고통을 더하거나 빼지 않은 채 그대로 충실히 드러내려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비록 작품을 읽으면서 유쾌하고 통쾌하거나 스릴을 느끼는 등의 도파민을 얻기는 어렵지만,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 어떻게 변해가고 그 안에서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근원적인 생각을 곰곰히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옌렌커의 다른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빠른 시일 내에 읽어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