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한국의 주요 풍수 거점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 정기를 해치려고 했다던 중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 교단에 계신 역사 선생님들은 1980~90년대 선생님들만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하진 않을 것 같지만 그런 인식은 계속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파묘'는 친일파의 자손이었던 부유한 집안의 묫자리를 이장하는 전반부와 일제시대 한국의 정기를 훼손하기 위한 사무라이 쇠말뚝을 파해치는 후반부, 두 개의 겹쳐진 에피소드를 파해치는 이야기이다.
음양오행이나 풍수, 혼령과 정령(도깨비?) 같은 논리적인 것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들을 다루고 있으나 스토리는 논리정연하고 세련되게 흘러간다. 영화 스토리 순이 아니라 시간 순으로 이야기의 배경을 정리해 보면 : 일본 음양사 기순애는 칼에 꽂힌 채로 관에 묻힌 일본 전국시대 장수의 묘를 파내 한반도로 이장하여 한민족의 정기를 끊는 쇠못으로 사용한다. 그 당시 한반도에는 일본이 한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박아 놓은 쇠못을 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기순애는 이들을 속이거나 혹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친일파인 고관대작 박지용의 할아버지를 속여 쇠못 위에 첩장한다. 큰 부자가 된 박지용의 자손들은 환청이 보이거나 쇠약해져가는데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무당 화림(김고은 분)과 봉길(이동현 분)을 찾는다. :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미국에 살고 있는 박지용의 손자가 화림과 봉길을 부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원래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좋아하고 초자연적인 것, 특히 SF등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는 편이 아니었다. 인생이란 논픽션이 상상력이 가미된 것 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러나 무속/음양오행/풍수/역학 등을, 그것도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 작품은 몇 번 더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마 대학시절 배웠던 일본 고전, 동양학과 민속학이 떠올라서 그럴 수도 있고, 최민식/유해진/김고은/이도현 같은 배우들의 신들린 듯한 연기에 푹 빠져서여서 였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