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여행기는 아니다. 일부 여행에서의 경험과 느낌을 적기는 했지만 주로 여행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와 영향, 그리고 실제로 어떤 체험에서 그러한 Insight를 얻었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가 비자를 미쳐 챙기지 못해서(비자가 필요한지도 모르고) 바로 귀국하게 되는 허무하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여행을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귀국하게된 사연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하게되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아이러니, 혹은 우연과 돌발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하는 여행자들이 진짜 원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으로 책 서두는 시작한다.
어떤 도시에서 여행자들은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어하기도 한다. 여행자의 표지들, 예컨데 커다란 배낭, 편안한 신발, 손에 든 지도, 카메라 등을 숨긴다. 마치 모처럼 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온 현지인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장'은 여행자들이 선망하는 나라와 도시에서만 수행된다. 뉴욕이나 파리, 바르셀로나와 같은 선진국의 매력적인 도시에서는 '습격을 감행하는 여행자'가 되어 스테레오타입으로 분류되기 보다는 노바디가 되어 가급적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반면 '여기 사시나봐요?' 같은 말이 별로 달갑지 않은 나라와 도시도 있다. 그 때는 여행자로서 현지인과 적극적으로 구별짓고자 한다. 마치 식민지 인도에 부임했던 대영제국의 관리들이 찌는 듯한 폭염에도 셔츠의 단추를 풀지 않고 긴 소매의 재킷을 고집했던 것처럼 여행자의 표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 (중략) ...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고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실뱅 테송의 표현대로 여행이 정말 일종의 습격이라면, 여행자들의 이런 선택은 원주민의 힘과 위계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 page 157 ~ 168
김영하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기까지 이주와 이동, 여행이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솔직하게 적혀 있다. 편안하게 문장을 음미하면서 볼 수 있으며 가볍되 경박하지 않은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뭔가 복잡한 일이 있을 때 쉬는 느낌으로 읽어보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