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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온 몸으로 느낀다는 것,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영어 제목이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다. 제목의 말 맛은 한국어(아마 일본어일 듯)보다 영어 제목이 더 착 붙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원래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단편집 제목이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인데, 이 책 제목의 원형으로 쓸 수 있도록 작가의 부인에게 요청을 하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카페 정리 후 전업 소설가가 되고 나서 '닫힌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매일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전에 자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조금만 방심하면 살이 찌는 체질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거의 매일 꾸준히 달리기를 하게 되면서 점차 풀코스 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스론 경기에도 참가하게 된다. 타인과 우열을 겨루고 승패를 다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작가에게 단순하면서도 나 자신과의 도전인 달리기가 여러 모로 잘 맞았다고 한다.

 

 달리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 셈인데,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나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어 재미있고 관심있게 정독하였다. 샐러리맨으로서 나 역시 최근 몇년간 배드민턴과 테니스등 네트 스포츠를 꾸준히 하게 되었다. 30대 중반이 넘어 새로운 운동(혹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게 되면 기초가 중요하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좋은 습관을 만드는 기초를 다지기 위해 지루하고 반복된 연습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 단계를 넘어갔을 때 성장한 내 실력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에 요즘 빠져 있는데, 이 책에서 하루키는 '달리기'라는 아주 원시적인 운동/스포츠를 꽤 깊게 그러나 잔잔하게 파고들고 있다.

 내가 테니스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혹은 그보다 더 와이프는 요가에 심취해 있다. 요가원에 다니는 와이프 지인이 신경숙 선생의 '요가 다녀왔습니다'를 와이프에게 추천해 줬는데, 그 책에서 신경숙 선생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다고 한다. 몸을 쓰는 일, 반복적인 단련/훈련에 대한 단상에 대해 신경숙 선생이 이 책에서 꽤 깊은 인상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굉장히 깊은 사고나 철학적인 고찰보다는 외국어나 운동 같은 어쩌면 반복적인 훈련과 습관화로 서서히 몸에 익숙해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차에 반갑게 맞이하게 된 책이다. 하루키 선생의 에세이 중에서 어쩌면 제일 공감이 가는 책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