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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 '파타고니아'

 첫장 프롤로그의 타이틀이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압도적으로 성공하는 법'이다. 뭔가 자화자찬, 자랑을 하려고 이렇게 썼을까? 이 책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창업자라고는 믿을 수 없이 명확하게 '환경'이라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자는 신념을 사업을 통해 일관되게 실천/실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파타고니아'의 성공을 통해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지구를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파타고니아'의 성공이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기여하도록 노력한다. 즉, 사업의 방식과 성공 모두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기업사와 관련된 책을 보고 있다고 했더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는 어릴 때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모피 사냥꾼을 꿈꾸던 등반가였다. 등반을 하다 더 강인하고 안전하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등반 장비를 만들기 위해 '쉬나드 이큅먼트'를 만들었다. - 만들었다기보다는 대장간이 회사가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 등반 장비를 만들다 등반과 탐험에 맞는 내구성 있는 의류를 만드는 것으로 확장하는데 이것이 <파타고니아>의 시작이 된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파다고니아>의 직원에게 회사의 철학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2005년에 작성한 것이 이 책 <파타고니아 -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었는데, 여러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이고 하버드 대학교의 사례연구 대상이 되는 등 뜻하지 않게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은 '역사'와 '철학' 두가지 챕터로 되어 있다. - 그러고 보니 사내에 회사의 철학과 가치관을 전파하기 위한 책으로서 좀 전형적인 면이 있다. - <파타고니아>가 어떤 회사인지 책의 목차에서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마케팅 철학에 대해서 요약해 놓은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다.

 "우리의 고객은 삶을 돈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으며, 삶을 깊이 있고 단순하게 만들기를 원하고, 공격적인 광고보다 믿을 수 있는 친구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리는 신뢰를 돈으로 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얻기를 원한다. 우리에게 최고의 자원은 입소문을 통한 추천이나 우리의 활동에 대한 언론의 호의적인 칼럼이다." - page 10

 이본 쉬나드와 말린다 쉬나드는 저명한 컨설턴트인 카미 박사를 만나 조언을 구하는데 회사를 매각하고 얻은 돈으로 재단을 만들어 그렇게 원하는 환경 관련 단체를 위해 기부하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스스로 왜 사업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본적이 없던 창업자는 회사의 위기를 극복한 후 경영철학을 재정립한다. 단순히 환경이라는 대의에 금전적 지원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파타고니아>가 다른 기업들이 환경에의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탐구할 때 본보기로 삼을 모델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으로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한 노력은 '환경'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한다'는 슬로건에서 볼 수 있듯이 파타고니아의 노동 문화는 창업자가 등반과 서핑, 아웃도어를 즐기다가 이를 위한 장비를 만들면서 성장한 역사를 인사 철학에 그대로 녹여놓았다.


'쉬나드 이큅먼트는 직원과 그 친구들을 위해 세계 최고의 등반 장비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작은 회사였다. 소유주와 직원은 등반가들이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을 사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동은 유용한 동시에 즐거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직원들의 창의적 욕구, 아름답고 기능적인 등반 도구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만족시켰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필요도 충족시켰다. 우리에게는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사이의 구분이 없었다. 고객의 관심사가 곧 직원의 관심사였다. 등반가들은 등반 장비를 만드는데 늘 관심을 두고 있었다. 파타고니아의 첫번째 의류인 럭비 셔츠와 스탠드업 반바지는 등반을 위해 만들어졌고 섬유 제품에 대한 직원들의 태도는 쇠로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태도와 다를 바 없었다.' - page 271

 '우리의 정책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언제나 유연한 근무를 보장하는 것이다. 서핑에 매진하는 사람은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에 서핑을 하러 가는 계획을 잡는 게 아니라 파도와 조수와 바람이 완벽할 때 서핑을 간다. 스키는 습기가 없는 가루눈이 올 때 타러 간다.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언제든 바로 나설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이름의 근무 시간 자유 선택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직원들은 이 제도를 활용해 좋은 파도를 잡고, 오후에 마음껏 암벽을 타고, 학업을 계속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맞이한다. 이런 유연성을 통해 자유와 스포츠를 너무나 사랑해서 엄격한 근무 환경에 정착하지 못하는 귀중한 직원들을 얻을 수 있었다. 특권을 남용하는 직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 page 278

 "2,700km 길이의 만리장성은 스타워즈식 망상에서 비롯된 방어 시설이다. 베를린 장벽이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을 생각해 보라. 몽골족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그들은 성문을 지키는 보초들에게 뇌물을 건네서 안에 들어오곤했다. 나는 1980년 담을 타는 방식으로 성안에 침입했다. 난이도는 5.8 정도에 불과했다."


 어린 시절 공부와는 담 쌓은 채 산타고 바다에 파도타러 다녔던 이본 쉬나드는 일과 제품에 대해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다.


 "나는 모든 일에서 달인이 되는 길은 단순함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기술 대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많이 알수록 필요한 것은 적어진다. 나 자신을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미미한 시도들을 통해 나는 보다 단순하게 살아야, 혹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해야 정말 중요한 모든 면에서 빈곤하고 결핍된 삶이 아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 page 391

 불교 신자로서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비슷해 이 문장을 보고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파타고니아의 지분 구조를 찾아보았다가 이본 쉬나드가 자신의 지분 98%(무의결권)를 환경보호 비영리 단체에 기부하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 이본 쉬나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부함으로서 정말로 단순한 삶을 향해 나아가도록 실천했던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몇 명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