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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진보의 불평등 기획은 왜 실패했는가 - '좋은 불평등'


유시민 선생의 책을 제외하고 '나는 어떤 쪽에 서 있는 사람이다'를 드러내고 써 내려간 책을 읽은 지 오래 되었던 것 같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양산에서 이따금 페이스북을 통해 책을 추천하시는데, 본인이 진행했던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써 내려간 책을 추천하신 셈이라 눈여겨 보다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막상 현대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막연히 보수정권의 신자유주의 혹은 대기업 위주 정책 때문에 그렇다든지(진보적인 분들), 아니면 불평등이라는 건 당연하다든지(주로 보수적인 분들), 그도 아니면 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 정도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자부하는 저자가 진보 진영에서 지금껏 어떻게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서 잘못 진단했는지를 파해친다. 그리고 좀 더 정확한 원인 파악을 통해 다른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집필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정의당이나 노동단체, 그리고 민주당과 그 영역의 시민사회는 '로빈후드적 세계관',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사관' 정서를 두텁게 공유하면서 불평등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정책을 구성해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이 불평등은 5가지로 집약된다.

1. 불평등 확대 시점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 확대
2. 불평등 확대 원인 : 재벌편향 정책, 신자유주의 편향 정책, 비정규직 남용 정책
3. 정치권 책임론 : 민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의 정책적 잘못
4.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로서, 진보적 경제학자는 대부분 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
5. 한국 경제 불평등은 국내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었음

저자는 위의 5가지 불평등의 통념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보지만, 특히 5번 국내적 요인에 의해 불평등이 결정되었다고 보는 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많은 지식인의 오해와 달리 한국경제 불평등의 시작점은 1997년이 아닌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숙련/중임금 노동자의 제조업 일자리가 중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고 그 영역의 노동력은 내수위주/저숙련 노동자로 전환되거나 고숙련/고입금 노동자 일자리로 이전되어 불평등이 확산되었다. 즉, 중국과의 경쟁에서 비교 열위가 된 대구의 섬유산업이나 부산의 신발산업은 몰락하였고 중국 제조업의 세계화에 보완이 되어 흥한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자동차 부품, 조선등은 중국 경제의 급성장에 올라타 이 산업에 종사하는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최저임금 1만원으로 대변되는 소득주도 성장은 임금 불평등은 줄어주었을지 몰라도 소득 불평등은 늘어난 효과가 발생하였다. 급격히 증가한 최저임금 때문에 그러한 지불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업장에서의 해고와 고용 축소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소득의 영역에서 가장 하층은 저임금 노동자가 아닌 '노인'이다. 왜냐하면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빈곤층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 취업자이면서 빈곤인 경우는 8.1%이나 취업자 없는 가구의 빈곤율은 65.6%이다. 빈곤 타파의 핵심은 취업이다. 그리고 취업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노인이다.

불평등의 국제적인 맥락(특히 중국), 그리고 하층민의 소득을 끌어올리려는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 두 가지가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이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고민과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측면에서 강력히 일독을 권한다. 다만, 솔직히 이 책이 굉장히 잘 쓰였다고 보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우선, 저자는 이 텍스트를 빨리 세상에 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지 책 편집이 정교하지 못하고 중언부언과 동어반복이 많다. 이를테면 TV토론에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번 같은 얘기를 반복하여 하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 또한 저자는 '나는 진보적인 영역에 있는데, 진보 동지들이 했던 불평등의 원인파악과 진단, 이로 인해 펼쳤던 정책이 잘못되었다. 그래서 다시 빨리 정책을 재검토하고 수정하자'는 어투가 너무 강하다. 본인이 펼치는 주장이 주로 진보 활동가 및 이론가, 혹은 정치의 과오를 리뷰하거나, 그 분들이 보기에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을 기입했기 때문에 일견 납득이 가기도 한다. 다만, 뭔가 일반대중이 보는 책이라기보다 정당 내 정책서 혹은 이론서 같은 태두리가 쳐진 책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 적폐세력 탓이 아니라 수출 대기업의 후한 성과급 때문이고, 우리가 보살펴야 할 계층은 저임금 근로자들이 아니라 고령층 노인이라는 결론은 생소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한 근거를 꽤 이론적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책이다.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1) 수출 대기업과 노동자들의 임금과 실적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불평등 정책은 아마추어적인 로빈후드 세계관에 따른 것으로, 오히려 기술기반 중견기업이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소득 전반을 올릴 수 있는 적극적인 교육과 R&D정책이 필요하고 2) 근본적인 불평등 축소의 핵심은 초고령화 대책"이다. 아... 이제 정말 모든 대한민국의 이슈는 저출산과 고령화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