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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내 삶 속에 찾아온 이야기들 - 김훈, '저만치 혼자서'

많은 사람들이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등 김훈 선생의 역사 기반 소설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말 김훈 선생의 팬이라면, 그래서 김훈 선생의 신간을 놓치지 않고 읽는 독자라면 선생님의 역사물 못지않게 현대물, 특히 단편소설의 매력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긴, 단편소설 못지 않게 에세이도 감동적이긴 하다.


역사 소설이나 현대 소설이나 김훈 선생의 공통적인 특징은 정말 디테일한 ‘취재'를 기반하여 작품을 끌고 나가는데 있다. 예전 어떤 인터뷰에서 김훈 선생은 본인이 직접 보지 않거나 확인하지 않은 것들은 감히 글로 담을 수 없다고 하셨다. 아울러, 그래서 이데올로기나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구름 위의 어떤 사상, 신념 같은 것은 다루기를 꺼리고, 오직 현실에 발딛고 있는 각 개별 인간의 군상들에 주로 관심을 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점에서 신작 <저만치 혼자서>는 한편 한편 모두 감동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특히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의 직업, 배경들이 모두 다양하여 이야기가 풍성하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설가들이 주인공이나 화자를 소설가, PD, 대학강사등 소설가류인 사람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점을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 세계와 시야가 좁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홍상수 감독임 - 그런 점에서 김훈 선생의 <저만치 혼자서>는 그런 내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었다.


책 마지막 부분에 '군말'이라는, 각 단편을 쓰게된 배경에 대해서 작가가 언급해 놓은 일종의 에필로그가 았다. 이중 [영자]라는 작품에 대해서 김훈 선생이 적어놓은 부분을 옮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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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는 오래 전부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구준생)들이 집단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9급 공무원의 여러 직렬에 따른 시험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들과 싼 음식을 파는 식당, 술집, 가게와 작은 방을 세놓는 오피스텔 건물(고시원)들이 밀집해 있다. 9급을 지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몇 년 동안 이 동네에서 살면서 학원에 다닌다. 해마다 9급 시험이 끝나면 사람들은 흩어지고 새로 모인다. 합격한 사람보다 낙방한 사람이 훨씬 많다.
이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나는 이 동네에서 보았다. 삼수 끝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낮에는 오토바이로 배달 노동하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9급을 준비하는 이도 있는 한편 가수가 되려고 노래를 연습하는 젊은이도 있었다. [영자]는 이 노량진 9급 학원 동네의 젊은이들을 관찰하면서 쓴 글이다.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에서 보았다.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이 작동되고 있었다.
날이 저물면 구준생 남녀들이 사육신 묘지에 와서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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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5TthX6sdF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