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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개구쟁이 문학소년의 추억 -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손끝의 힘으로 밀어쓰는 소설가가 김훈이라면, 입술의 파워로 흐르듯 쓰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성석제다. 새내기 시절 환영회같은 술자리에서 수줍게 앉아 있으면 처음엔 조용하다가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천천히 좌중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입심으로 술잔조차 입에 댈 시간도 없이 웃게 만드는 선배. 그런 선배와 함께 있는 느낌이랄까? 소설책을 읽기 전에 그의 산문집 몇 편을 읽고 그런 느낌을 받았다.

소설은 결코 자신의 얘기가 아니며, 다른 어떤 경험을 받아들이고 버무리고 얽고 섥어 만들어 내 놓은 창작물이다. 그러나 작가 개인의 성향을 전혀 배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도 크게 두 가지 색깔의, 분위기의 작품으로 나뉘어진다. 유년시절 작가의 경험과도 맞물리는 듯하다. 가난한 집안의 머리좋은 수재와 장난기 가득하고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가 한 몸에 어울려 있는 모습.

장난기 있는 익살스런 모습이 더 익숙하지만, <첫사랑>, <황금의 나날>처럼 유년의 아픈 기억을 묘사하는(본인의 것이든 아니든) 작품도 나름 볼만하다. 늙은 꿩이 어리고 사랑스런 암꿩과 정을 나누고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이른 봄>이 나는 제일 재미있었다.

점점 성격이 급혀져서일까, 풀 한권짜리 소설보다 짧은 소설집이 더 좋아지는 내 취향에 많이 맞는 작품들이었다. 디테일보다 속도감있는 전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맞을 듯!

(미디어몹 : 2006/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