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선생의 '딩씨 마을의 꿈'을 읽고 전염병이 도는 마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주민들을 착취하는 인물과 그 인물의 아비가 겪는 인간적인 번뇌를 따라가며 큰 감동을 받았다. 과연 모옌, 위화와 함께 중국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릴만한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옌롄커 선생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보다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빌려 보게 되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옌롄커 작가의 소설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되어 출간된 작품이라고 하고, 무려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소감을 말해야 할텐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실망스럽다. 어떻게 보면 남성들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주인공 우다왕은 성실하고 착한 농촌 청년으로, 그 성실함에 힘입어 마을의 회계 담당자의 주선으로 인민공사의 간부를 통해 군에 입대하게 되고 그의 딸과 결혼도 하게 된다. 다만, 결혼하면서 장인과 아내에게 군 간부로 승진하고 도시의 호구(戶口)도 받을 수 있도록 약속한다. 군에서 성실하게 지내던 우다왕은 사단장의 공관병이 되어 사단장과 사단장의 아내 류렌의 가사 시중을 든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묵묵한 처세를 바탕으로 신임을 얻는다. 사단장이 2개월간 베이징으로 출장을 간 사이, 류렌은 우다왕을 유혹한다.
처음엔 두려움에 휩싸여 우다왕은 류렌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류렌이 권력을 이용해 우다왕을 궁지로 몰아 넣고, 아름답고 세련된 류렌의 매력도 뿌리 치지 못해 위험한 사랑을 한다. 이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거의 소설의 반에 해당할 정도로 길게 묘사된다. 사단장이 돌아오기 바로 전날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정사가 밝혀질 것이 두려운 우다왕을 류렌이 장기휴가를 보내주고, 한달반 동안 멍하게 지내던 우다왕이 부대로 돌아와 보니 사단장이 군 현대화라는 명목으로 부대를 흩트려 버린다. 류렌은 우다왕의 아이를 임신하여 배가 불룩해 졌으나, 부대 해산으로 결국 우다왕과 류렌의 불륜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지지게 된다. 사단장과 류렌은 그 이후 더더욱 승승 장구하여 군사령관이 되고, 15년후 우다왕은 사단장과 류렌의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오지만 류렌은 우다왕을 만나주지 않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라는 쪽지를 보내 준다.
어떤 이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팻말이 중국 개혁개방 이전 경직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우상 같은 것이고, 둘 사이의 사랑이 그 우상화와 신격화를 깨 부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그저 남자 입장에서 우다왕이 억세게 운이 좋은 녀석이고, 류렌은 남성들의 판다지를 100% 충족시켜 주는 상징과 같은 여인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먼저 봤다면, '딩씨 마을의 꿈'과 같은 다른 옌롄커 선생의 작품을 찾아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운이 좋았다.... 라고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