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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닫는데로

香港 Central에서





미친듯이 길을 헤매다 City Bank Tower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있다. 부모님을 원망해 본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럴 때마다 '길치'로 낳아주신건 참 한스럽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게다가 도시도 복잡하기 이를데 없으니 미칠 노릇.

기왕에 외국에 온 바에는 홍콩에서 유명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이나 술집, 카페에 가면 좋으련만... 역시 눈에 띄는 곳이 프랜차이즈라 어쩔 수 없이 쉬러 들어간 곳이 이렇다. 비만 오지 않았다면 밖의 벤치에서 햇빛 쐬면 좋을텐데. 그래도 스타벅스 커피는 서울에 비해 싸다. HK$21 정도니, 한국보다 대략 700~1000원 정도 싼 셈. 기본 물가는 비슷한데 대부분 물품에 서울보다 세금이 적게 붙는다고 한다.

공항이든 번화한 시내에서든, 이제 삼성 전광판을 보는 건 별 새삼스럽지 않는 일이 되었다. 그보다 홍콩으로 들어오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컨테이너들이다. 골리앗이 무수히 서있고, 어쩌면 우리 회사에서 만들었을지 모르는 배들이 떠 있는 국제항구 홍콩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센트럴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는 HSBC, 스탠다드 차타드, 중국은행 등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 건물을 보면서, 홍콩의 주력 산업이 금융과 물류라는 점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너무 준비하지 않아 후회 막급이다. 도시 한 곳이라 너무 방심했던가. 원래 여행은 준비가 반이 넘는다. 떠날 곳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알아보고, 지도도 꿴 다음 실제 여행 떠나서는 확인하며 즐기는 건데... 수없이 체크하고 확인했던 뉴질랜드, 일본에 비하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소홀했던 것 같다. 뭐가 보고 싶었던 건지, 어떻게 돌아다닐 건지 등등...

큰 계획없이 발길 닿는데로 다니는 것도 사실 그리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타고난 길치, 방향치에 길마저 복잡해 몇 번이나 같은 골목, 같은 블록에서 헤맬 때마다 정말 우울했다. 서울도 동경도 복잡한 도시지만 어디 홍콩만할까? 규모는 이 두 도시보다 작은 편이지만 중요한 곳들이 상당히 몰려있고, 도로는 어찌나 좁은지... 인도도 차도도 좁은데 사람도 차도 많으니 체증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생각해낸 방법이 고가 도로와 고가 보도인 듯 하다. 빌딩 숲을 엮어 인도로 만든 독특한 방식인데, 익숙해지면 편할 지 모르겠으나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진짜 쥐약이다. 바로 옆 블록을 이동하려고 해도 고가 도로가 아니면 갈 수 없고 고가 도로 입구도 찾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영연방이었던 탓에 길마다 이름이 잘 정비되어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당분간은 이렇게 해맬 수밖에 없을 듯 하다. 흑~


(미디어몹 : 2006/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