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권희철씨의 해설에서 인상 깊은 문구 몇 개를 가져왔다.
- 잘못된 인식과 고집과 고통이 집합소로서의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여기 남은 건
무아의 상태가 아니라 대혼란이다. 무너져내리는 세계 속에서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바다 위에서 영원히 허우적거려야 하는 고통과 공포가 너의 몫이다. -
- 연쇄살인범의 세계에서 주어는 오직 자기 자신 뿐이며 나머지 것들은 주어에 의해 부정당하기 위해 준비된
곧 파괴될 재료들일 뿐이다. 이 홀로 있는 주어가 스스로의 강력한 주권을 만끽하는 것이 연쇄 살인의 현장이다.
이 사드적 쾌락의 무대 위에는 자유와 고독이 위험하게 결탁해 있다.
- 그는 어떤 사람들과도 관계맺지 못하는 무능력 때문에 홀로 있는 주어의 자유와 권위를 누렸지만,
그가 그런 자유와 권위를 누리는 한에서 그는 철저하게 고독하고 그런 점에서 그는 악마적 자율성의
감옥에 갇혀 있다. 그것이 그가 잘못 읽은 금강경의 악몽이다. 그는 이 악몽, 연쇄 살인의 삶을 살게 한
그 악몽에 대한 처벌로 말년에 또 다른 악몽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것이 알츠하이머 - 반야심경의 악몽이다. -
- 이 소설이 함축하는 성숙한 남성의 체험의 형식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가진 어떤 계획 의지 열정도
그에 합당한 결말이나 보상에 이르지 못하리라는 체념, 우리가 조금씩 밀고 나가는 삶의 궤적이 결국에는
불완전한 형태로 끝나 버리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예감, 우리를 감싸고 있는 세계와 운명에 어떤 내재적 의미도
없으며 그저 부조리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갈 뿐이라는 어렴풋한 인식. 이 어렴풋한 인식을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하게 만드는, 우울한 예감을 현식로 드러내는, 체념들로 충전되어 있는 체험의 형식.
연쇄살인범의 생각과 행동은 나의 경험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이라,
이러한 연쇄살인범의 생각과 행동을 김영하씨가 어떻게 취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해설에 나온 대로 너무 잘 읽히는데, 이렇게 너무 잘 읽히는 것이 함정으로서
군데 군데 요소에 마지막 전환(반전이라고 하기엔 조금 덜 충격적인)에 대한 복선이 깔려 있다.
계속 소설을 읽으며 속도가 붙어서 잘 발견하기 쉽지는 않지만...
약간 추리소설 같은데, 두어번 더 읽어보면 몇 가지 그냥 흥미 위주의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깊이있는 형식적인 장치들이 있다. 아주 긴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