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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무한궤도 달리는 맬서스 인구론의 비극 - 봉준호, <설국열차>

 

<스포일러 가득>

 

오늘 한국경제신문에서 한면을 다 써서 경제학적인 개념으로 이 영화를

분석해 놓았다. 전면 기사인데 문장문장으로 쪼개 적어 보았다.

 * 2013. 8. 10 (토), A16면, 이승우 기자

 

 - 이 영화의 잔인한 반전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열차의 한 칸씩 나아갔던

   그 모든 행위가 열차의 존속을 위해 유도된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열차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정 주기마다 꼬리칸 사람들을 학살해 왔다는 것. 지금까지 일어난

   수많은 반란은 학살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다.

 

 - 정기적인 학살의 가장 큰 이유는 적정 인구 유지다. 가차 안의 인구 수가 일정 선을

   넘어서는 순간 물자가 부족해질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상상은 영국의 목사이자 초기 경제학자인

   토머스 로버트 멜서스의 상상을 디스토피아적으로 뒤틀어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다행히도 멜서스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예측의 주된 원인은 기술 진보에 대한

    과소 평가다. 살충제, 비료, 영농 기계, 새로운 품종 개발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부 한 사람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 만약 커티스의 반란이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장은 꼬리칸 주민의 삶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앞 칸에 극단적으로 편중된 부가 이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위적 인구 조절도

   없기 대문에 열차에 사는 사람 역시 증가할 것이다. 기술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무르는 이상 이들의 앞날에는 파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상황이다. 때문에 커티스도 윌포드에게

   기차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맡았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예전 대학 다닐 때 '독점 자본의 심화와 불황이 전쟁을 낳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환경에서는 호황과 불황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지금까지 근대 역사의 전쟁은

불황에 대한 극단적 타계책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영화 역시 체제와

분배에 관해 우리가 놓인 처지를 판타지의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는 열차에서 탈출한 두 어린아이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며,

이 기사를 읽고 나서는 최근 회사 업무하면서도 느끼고 있는 '기술 혁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개인과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창조적 발상을 통한 혁신적 기술'이

결정적인 가치를 만든다는 생각을 더욱 깊이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