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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해변의 여인'을 봤 습 죠!





(spoiler)

누군가 자신의 치부를 들춰내 보이고, '넌 이렇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좋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열린 마음으로 유연하게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하느냐는 개별 인간의 태도와 상황의 차이겠지만. 현명한 방법은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구렁이 담 넘듯이 타넘어가고 나중에 자신의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보는방법(받아들일 경우), 역시 유머있게 상대방의 말을 받아 비틀어버리든가(공격하고 싶은 경우)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대부분 수컷)들은 모두 진실하지 않은 방법으로 어설픈 행위를 통해 적대감을 표현한다.

홍상수 영화의 탁월함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던 대로,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법한 추한 마음과 행위를 보는 사람이 낮뜨거울 정도로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데 있다. 솔직히 말하자, 중래와 창욱의 욕망과 행위는 수컷이라면 크든 적든 비슷하든 약간 다른 방식이든 느끼고 경험해본 것이라고 감히 단언하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저런 덜 떨어지고 가식적인 인간이라니...'라고 혀를 찻지만,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이 조금씩 나를 죄어오는 것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호오~ 神이 있다면 정말 구원받고 싶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여성을 상대로 갖고 있는 도덕적인 마지노선이라고 한다면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섹스는 교감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중래가 문숙을 꼬실 때, 정서적 교감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성욕이 앞서 있다. 그건 선희도 마찬가지. 영화 초반부 유부남인 사실을 숨기고 만났던 창욱의 비밀을 중래가 꼬발리고 일어나는 수컷들의 아귀다툼 같은 건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이었고, 다행히 그런 비슷한 일은 나에게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 이렇게 홍상수는 남자를 고해성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매개는 항상 여성이다.

좀 더 내 얘기를 하자만, 독일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중래와 창욱에게 나는 문숙보다 100배나 더 분노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과거에 정말 다른 남자를 깊이 마음 속으로 사랑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성관계를 가졌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러니까. 나는 그래도 되고, 상대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은 남녀를 떠나 모든 인간사에서 정말 역겨운 일이다. 얼마전 사랑에 실패했을 때 너무나 열려 있는 이 자세가 사랑의 실패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태도는 버리지 않을 생각이다. 이건 내 연애관을 떠나서 인생관에 근본이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

홍상수 답지 않게 약간의 '희망'을 심어놓는게, 한국 남자들이 다 중래 같지는 않다는 점 - 혹 닮더라도 똑같이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마지막 씬에서 보여준다는 거. 재미있었다. 그 마지막 하나로 왠지 뒷맛이 그렇게 씁쓸하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상업영화'에 가깝다고 평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상업성'보다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희망'의 구축이 조금 당황스러웠을 따름이다.

(미디어몹 : 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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