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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죄를 찾고, 만들고, 키우다 -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사과는 잘해요>는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안개 속을 해쳐나가는 듯한, 혹은 난해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술술 잘 읽히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명료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작품 속의

이야기를 알레고리적 환상으로 읽기에는 사실적이라는 느낌이 앞서고, 그렇다고 사실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 개연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마치 땅 위를 걸어가긴 하되 방바닥이 땅으로부터 한 뼘

정도 떨어진 허공을 디디고 있는 듯, 환상도 현실도 아닌 모호한 공간을 배회하는 독특한 독서 체험을 제공한다.

            - '박해경'의 해설에서

 

 

이기호씨가 <카프카>를 읽고 영감을 받은 소설이라고 한다.

처음엔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주인공이 시설에서 나온 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사과'를 받아주는 일을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죄'와 '사과', 인간의 부조리함, '나'와 '시봉'이라는 두 모자란 사람들...

뭔가 답답하고 막막하면서도 멍한 이 두 인물의 안개 속을 해쳐나가는 듯한 이야기는

중간중간에 사람을 쿵 하는 게 있다.

 

문체도 참 독특하다. 이기호 소설은 일관된 문체를 고집하기보다 조금 소설마다

다채롭게 사용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적응하기 어렵지만 독자들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두 주인공의 뭔가 아기와 같은 순수한 언어가 밑바닥 인생들의

비루한 언어와 뒤섞여 조금 몽롱한 느낌이 깔릴 수 있도록 풀어놓았다.

 

이기호의 소설은 특히 문체와 소재 면에서 각각 작품의 독특함이 짙기 때문에

다음 소설을 섣불리 예단하기 힘들다. 그래서 매번 기대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