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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마음이 촉촉해 진 날 - 젊은 작가들의 축제


간단히 저녁먹는 약속이었는데, 4시에 홍대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전성태, 신용목씨의 작가와의 만남에 들리자고 하네요.

잘 아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작가와의 만남'같은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자리가 오랜만이라 흔쾌히 알겠다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2008 Seoul Young Writer's Festival로서, 홍대 앞 상상마당의 7층 아카데미 섹션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상상마당은 KT&G가 운영하는 비영리 문화공간으로서 문학, 독립영화, 비주류 음악 등 독립정신이 강한 다양한 문화를 소화할 수 있도록 마련한 센터였습니다. 꽤 멋지더군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전 세계의 젊은 작가군들(정의 내리기 어렵지만)을 초청해 함께 작품을 낭독하고 질의 응답을 갖는 시간이었습니다. 학부 다닐 땐 전공이 문학이었는데 졸업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나 봅니다. 숫자와 화폐, 기계적 용어가 난무한 사무실에 찌들린 건조한 마음에 촉촉히 수분히 맺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작품집과 참가자 프로필이 들어있는 책자를 각각 1권씩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을 정신없이 읽었더랬죠. 작가의 comments 중 짠하게 남는 몇 가지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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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의 문학평론가였던 김현의 말로 제 문학관을 대신해 밝히고 싶습니다.
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문학은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 소설가 박성원

"지구상에 6,000개의 언어가 있고 그 중 매주 1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언어를 잃는다는 건 그 언어를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영유하는 세계 하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어공용화론이 나왔을 때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같은 사물을 영어와 한국어로 지칭했을 때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전라도 남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겨울, 처음 남원에 갔을 때 눈내리는 거리에서 '아따, 눈이 허벌나게 와버린당께~'라고 말하는 아이의 감칠나는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시인 신용목

"한참 후 내가 이미 많은 책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나는 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이야기들 속에서 나와 동일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착한 천사들, 공주들 그리고 마녀들까지도 모두 금발 머리에 바알간 볼,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이야기 속의 왕자들은 내 어머니같은 미혼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왕들은 술에 취하지도 않고, 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족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책 속의 영웅들은 온세상 사람들을 구해냈지만 나 같은 검둥이 계집아이는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나는 내가 그 시절 읽었던 책들을 인용하곤 합니다. 내가 찾아낼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써야만 한다는 이 절박함은 바로 그때 느꼈던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 시인, 극작가 Teresa Candenas


"우리와 다른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스스로의 처지에서 합당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경각심, 그리하여 내가 이 작품집을 내고 엮어 대중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 시인, Halejoetse Tsehlana

(미디어몹 : 2008/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