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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AI라는 전쟁터의 유일한 무기상, - 스티븐 위트, '생각하는 기계'

'일론 머스크와 젠슨 황은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이민자였고 워커홀릭이었으며, 비전가였다. 둘 다 소리를 질러댔고, 도박과 같은 도전을 즐겼으며 세계적 수준의 엔지니어였다. 그들은 운 없는 비전가들의 잔해가 널린 황량한 상업 지대에 자신감 있게 발을 들였고 처음으로 그곳을 번성시켰다. 그러나 더 예리하게 비교하면 분명 차이가 있다. 먼저 비전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랐다. 일론 머스크는 환상에서 출발해 현실로 되돌아오며 비전을 그렸고, 젠슨 황은 현실에서 출발해 미래를 만들어나갔다. 또 다른 차이는 충성심에 대한 태도였다. 일론 머스크는 충성도를 중시하지 않았고, 종종 사람들을 경고 없이 독단적으로 해고했다. 반면 젠슨 황은 거의 누구도 해고하지 않았고, 그래야 할 경우에도 여러 차례 경고를 주고, 성과 개선 계획을 시행한 후에 결정을 내렸다. 엔비디아에서 쫓겨나는 건 정말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 때 뿐이었다.' - page 321 ~ 322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엔비디아의 역사는 초기 고성능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만들던 시기와 GPU를 AI 인공지능 연산에 적용하여 개발하는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많은 반도체 기업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PC 비디오 게임 하드웨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젠슨 황은 <파괴적 혁신 distruptive innovation>을 나름의 경영이념으로 삼으며 엔비디아와 자신의 비전을 세워 나갔다.

'젠슨 황이 가장 좋아한 경영서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쓴 <혁신 기업의 딜레마> 였다. 1997년 처음 출판된 이 책은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경쟁자들에게 밀려 도태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개념인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켰다. 이제는 남용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이 용어의 원전은 여전히 되돌아볼 가치가 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모델에서는 소규모 기업들이 시장 리더들이 무시해 온 틈새 시장이나 수익성이 낮은 고객을 만족시키면서 대기업들을 서서히 잠식해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 기업은 반드시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업의 목록에는 고철 재활용 업체, 유압 굴착기 제조 업체도 포함되었다. 그가 파괴적 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든 기업은 혼다였다. 혼다는 1960년대 초, 미국 10대들에게 혼다 슈퍼 컵 이라는 오프로드용 오토바이를 판매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GM같은 대형 기업들은 오프로드용 오토바이 시장을 외면했다. 모든 조건이 같다면 10대들에게 오토바이를 파는 것보다 사업가에게 캐딜락을 파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GM이 시장을 이처럼 무시한 덕분에 혼다는 오히려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혼다는 전문성을 활용해 소형차를 생산했고, 하위 시장에서부터 미국 자동차 산업을 잠식해 나갔다' - page 137~138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하나씩 누르며 자리를 잡았다. 엔비디아 GPU로 현란하고 수준 높은 게임들이 개발되어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엔비디아는 자본 시장에서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산업의 특성상 벌어들인 이익을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 끊임없이 투자해야 했고, 거대한 반도체 산업에서 게임용 그래픽 카드라는 작은 시장의 골목 대장 정도의 지위로 평가받았다. 기술 개발의 재투자 속에는 CUDA도 포함되어 있었다. CUDA는 GPU를 활용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용이하게 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이다. AI가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전에는 의사, 천문학자, 지질학자 등 아주 작은 시장 - 어쩌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 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픽카드를 슈퍼컴퓨터로 바꿔주는 이 소프트웨어는 2009년 한 해에만 30만회 이상 다운로드되었다. 하지만 이후 3년 연속 관심이 감소했고, 2012년에는 신규 설치 수가 10만회 초반대로 떨어졌다. 과학 컴퓨팅 시장은 포화 상태처럼 보였고 투자자들은 엔비디아가 CUDA에 계속 투자하는 것이 재무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중략)... 엔비디아의 주가는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었고, 회사의 매출과 직원 수는 크게 늘었는데도 이익은 정체 상태였다. 젠슨 황은 슈퍼컴퓨팅을 대중에게 보급하려 했지만, 문제는 대중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2012년 말, 알렉스넷팀이 이미지넷 대회에서 신경망 훈련에 따른 결과를 발표하였다. 엔비디아의 GPU가 AI 연산에 필요한 하드웨어/엔진이 되고 CUDA가 그 엔진을 효율적으로 훈련시키고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운전기술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회사 내에서도, 주주들 사이에서도 CUDA의 존재 가치에 대한 도전에 끊임 없이 시달렸던 젠슨 황은 이제 CUDA를 통해 GPU를 게임용에서  AI용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되었고 AI 시대를 독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엔비디아는... 누구나 알고 있듯,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이 되어 버렸다.

서점에 가 보면 많은 AI 관련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엔비디아에 관련된 책이지만 AI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며,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이상 - 게임 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초거대 병렬 연산과 그것이 이루어낼 수 있는 무언가 - 를 꿈꾸었던 창업자와 그 주변 동료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