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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 '배민다움'

 알라딘 중고서적 책방을 어슬렁거리다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배민의 독특한 '한나체'만 새겨진 표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IT플랫폼 업계에서 2016년도에 나온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과연 시의성 있는 것인지 의문은 들었습니다. 창업과 성장기, 코로나19 직전 딜리버리 히어로에 합류한 우아한 형제들(우형), 코로나19 시절과 엔데믹을 맞이한 우형은 완전히 다른 회사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도 사실이었지요. 어쨌든 김봉진 대표가 창업하던 시절부터 업계 1위를 달성할 무렵까지의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보는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인양품 디자인' 1권과 함께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이 책은 저자인 한양대 경영학과 홍성태 교수와 김봉진 대표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편한 편입니다. 중간 중간에 홍성태 교수가 인터뷰 내용에 덧붙여서 마케팅과 경영학의 일반론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는데, 좀 뻔하다 싶어 진부한 느낌이 드는 내용은 패스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 2023년도 시각으로 전반적인 배달의 민족의 발전사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경로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독특하다 싶은 부분이나 꽤 의미있게 다가온 부분만 발췌하여 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1.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김봉진 대표가 배달 주문 플랫폼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 법인을 세운 것도 아니고 바로 투자자에게 달려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장님들이 전단지를 돌려 음식점을 홍보하고 알리는데 고객의 리뷰나 평가를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친한 지인들과 App을 출시한 것이 배달의 민족이었다고 합니다. 비즈니스 타이밍을 잡기 위해 작게 빠르게 테스트 해보고 아니면 뒤로 빠져 피벗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다만 그렇게 하더라도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결의에 찬 마음가짐으로 사업에 뛰어드는데, 김봉진 대표는 '배수의 진'의 절대 치치 말라고 강조합니다. 어렵고 절박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독하게 결심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고 함께 일하는 사람도 힘들어지므로 즐기면서 작은 성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아한 형제들은 리스크를 보수적으로 피해가는 편이었으며 사업을 할 때도 이미 잘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을 땐 정면승부 하지 않고 우회하여 공략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합니다.

 김봉진 대표가 실패사례로 꼽은 게 '라인 와우'라는 서비스였습니다. 라인과 함께 배민라이더스처럼 배달이 안되는 레스토랑 음식을 대신 배달해 주는 서비스였습니다. 일본의 경쟁 서비스인 편의점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실패 원인은 라인과 우아한 형제들 모두 초기에 너무 많은 인력을 투입한 것이 문제였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인력이 많이 투입되니 출자한 자본금과 리소스가 생각나고 1년이 지나도 성과가 나지 않으니 길게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2. 배민의 유저는 조직이나 모임의 막내인 20~30대 초반 사회초년생이다.

 배민은 초반에 타겟 고객군을 상당히 좁혀 접근했습니다. 

 '저희도 앱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배달 음식은 누가 시키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달에 적어도 두세번은 배달 음식을 시키는데, 일반적으로 조직이나 모임의 막내가 시키죠. 팀장보다는 팀원이 음식을 주문하고요. 윗사람이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다보니 20~3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이 주문을 합니다. (중략)... 저희가 생각한 고객의 특징은 B급 문화에 익숙하고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친구들이었어요. 사실 브랜드라고 하면 나이키, 애플 같은 거 생각하잖아요. 대부분의 브랜드가 고급스럽고 깔끔하거나, 젊고 역동적이거나, 둘 중 하나에요. 그런데 분명 키치함의 B급 영역에서도 소비가 이루어져요. 저희는 그걸 노렸어요. '왜 이쪽으로 안 넘어올까?'하고요' - page 65

 '제가 디자인하면서 훈련했던 방법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배민의 UI등을 보면 20대가 좋아할 만한 거잖아요. 제가 디자이너들에게 이렇게 물어봐요. '만약 40대 주부나 50대에 맞는 디자인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채도를 낮추고 폰트 사이즈를 키우면 50대가 좋아하는 디자인일까요?',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죠. 더 깊이 이야기해 보면, 결국에도 50대 분들도 마니아적인 디자인을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결코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과 가치관의 문제죠.' - page 74

 지금이야 배달의 민족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서비스 점유율을 가진 국민 1등 플랫폼이지만 초기에 사업 확장할 때에는 타켓고객군을 좁혀 그들로 하여금 배민의 팬이 되게 만들어 고객군을 확장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었습니다.

 3. 창의적 기업에는 어떤 룰이 필요할까?

 위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는 오래전부터 SNS를 통해 이미 널리 퍼져 있습니다. 코로나19 엔데믹 상황에서 가장 의미있게 다가오는 문구는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였습니다. 우리 회사의 많은 직원들도 재택근무를 서서히 폐지하려는 회사 방침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제가 꼰대인지 몰라도 주 5일 모두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고, 함께 모여 성과를 내고 성장을 하기 위해 모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일을 할 때 인간적인 스킨십과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일하기 전에 신뢰가 쌓이고 유대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일이 잘 된다고 생각해요. 소소한 잡담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는 신뢰로 발전할 수 있죠.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다 잊어버리고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만 남지요. ... (중량)... 수시로 대화를 나누면 PPT를 그렇게까지 공들여 만들 필요도 없어요. 거의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한번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문서화 하면 돼요. 투자자들에게 보고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왔을 때 이 일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하니까 문서를 정리하는 식이에요. 

 잡담의 효과랄까 목적은 또 있어요. 반복적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변형하거나 수정하는데 익숙해지는 거에요. 내 아이디어를 누군가 반대해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거죠.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끌고 왓는데 그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하면 누구나 크게 상처 받잖아요. 하지만 잠깐 생각했다가 툭 던진 아이디어라면 빨리 접을 수 있겠죠.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집단이 머리를 모아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거든요.' - page 234

 2016년도 홍성태 교수와 김봉진 대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현재 우아한 형제들은 덩치가 큰 회사가 되었고 독일 딜리버리 히어로의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할 당시의 회사 내외 상황과 지금은 많이 다를 텐데 지금은 어떻게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지켜나가는지 한번 내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이와 별도로 제가 얼마전부터 배민에서 진행하는 마케팅 및 프로모션 서비스가 있습니다. 바로 '배민라이브'라는 유튜브 채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hyL1H6KY_4&list=PLB8eEXcG6MHYZNdbcnKV8-6WP5AHWaRyt&index=10 

 

 숨은 인디음악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B급 정신을 살리면서도 세련되고 쿨한 느낌이라 저는 배민라이브의 팬입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2023년에도 우아한 형제들은 나름의 기업 문화와 철학을 굳건하게 지켜내고 있는 꽤 멋있는 기업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