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문지방 너머로 들려오던 너의 체읍(涕泣)하는 소리에
내 억장이 다 무너져 내렸다.
온 천지사방(天地四方)이 새까맣게 변하던 그 순간,
내 다시 몸을 돌려 너에게로 달려가고만 싶었느니라.
허나, 차마 그리하지 못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뒤꼍을 벗어나오면서
나 또한 너와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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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묻겠다.
내가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걸리고 만인의 멸시를 받아야 죄인이라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더냐? 백성이다.
너와 다름없는 이 나라의 백성이다.
새 봄의 진달래가 천지를 불태운다. 온 백성의 가슴에서 터져나온 응어리들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모진 인연이구나.
다시 만날 때는 부디 칼끝을 겨누지 않는 세상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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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닌 길이라...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이 썩은 세상에 나 또한 새로운 길을 내고자 달려왔을 뿐이오.
내 오늘 이곳에 뼈를 묻겠지만,
내가 죽은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기 위해 걸을 것이오.
언젠가는 그들의 피와 혼이 계곡을 메꾸고 강을 메꾸고,
반드시 새로운 길을
반드시 새 세상을 열 것이오.
나는 지금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