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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부딪히고 엇갈리는... - 'Crash'




꽤 전이었던가? 친구랑 맥주 마시며 이런 저런 잡담하다가, 뜬금없이 '왜 미국이 강대국일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친구는 지하자원도 많고 시스템도 훌륭해서라도 대답했고, 나는 조지 부시같은 싸이코도 있지만 노엄 촘스키같은 사람들이 있어 자기 정화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한 친구는 이민국이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며 이루어진 문화 다양성이 미국의 풍부함을 가져다 준다고 보았다. 특히 나는 마지막 친구가 한 말이 상당히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한 학기가량 호주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어머님 친구분이 호주 멜번에 사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분은 영국분과 가정을 꾸리고 사시면서 한국 교민분들과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는 활동적인 분이었다. 보름에 한 번 정도 가서 전문가(?)가 담아준 김치도 타먹고 불고기도 먹었다. 아주 가끔 어머니 친구분과 교민분들 집에 초대되어 식사한 적도 있었는데 오래 머문 것도 아니라 뭐라고 자세히 얘기할 수 없지만, 말로만 들었던 이민자의 삶을 엿볼 수는 있었던 것 같다. 이민자들의 특징은 2개 국어에 아주 유창하다는 거다. 그게, 한편으로 그들을 강하게 해 주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을 또 한없이 약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 친구가 말했던대로 다민족 이민국가가 가지는 문화 다양성이 미국의 힘을 구성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건 하나의 언설(言說)일 뿐, 그 안에 미시적으로 돌아가는 개별 인간의 삶은  단순하지 않다. 'Crash' 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비단 인종문제만은 아니지만, Racism은 등장 인물이 살아가는 동안 느끼는 오해와 편견의 중심에 있다. 인종간의 갈등을 해소려면 편견과 배타성을 배제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갈등의 역사는 깊고 그 고리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감각적으로,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일 민족 국가라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나라에서 인종의 문제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인즈 워드나 다니엘 헤리를 통해 드러난 차별의 역사는 워낙 소수자의 것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출산율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모두 우울해 할 무렵, '세계화 시대라고 떠들면서 자기 입맛대로 단어를 집어 삼키지 말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한민국 안으로 받아들이면 인구감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피부색이 다름으로 인해 빚어질 지도 모르는 여러 갈등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낙천적이었던지, 아니면 나 역시 별 생각이 없었던지 둘 중 하나다.

오해로 피터를 쏘는 핸슨, 크리스틴을 구해주는 인종차별주의자 형사를 보면서 '왜 인생은 이 모양인가?'라고 생각했다. 우연성이 과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던데,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또한 인생은 그 정도의 우연성이 반복된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느끼는 걸 보면 영화는 꽤 호소력 있었던 것 같다.

(미디어몹 : 2006/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