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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Brokeback Mountain'




사람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다고 한다. 부모님들은 중고등학교 자녀들에게 공부하도록 계속 조르면서도,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물론 ‘좋은’ 친구란, 굉장히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 주관성엔 부모들 각자의 세계관과 교우관이 담겨져 있지만, 공통적으로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보편성은 띄게 마련이다.

어떻든 간에, 반이 바뀌고 매년 3월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한다는 기쁨과 스트레스가 교차할 무렵, 대부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간다. 남자들의 경우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룹이 되기 쉽지만, 그래도 왠지 ‘베스트 프랜’은 항상 짝수였다. 운동하면서 뒹굴고 만나면 욕부터 하는 사이지만 대강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누구나 그런지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베스트 프랜에게 단지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 그건 버스정류장에서 항상 마주치곤 했던 이름도 모르는 여자아이를 만날 때 느낀 두근거림과 설레임은 결코 아니었다. 누군가 항상 옆에 있어야 ‘왕따’가 아님을 증명하는 징표로서의 친구도 아니었다. 이 좋은 녀석들(혹은 녀석)과 함께라면 ‘까짓 거 여자 따윈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느낌.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노니는 수천 마리의 양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8월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와 잭은 만난다. 약혼녀와 함께 할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에니스는 돈을 벌어야 했고, 카우보이가 되고 싶었던 잭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고물 자동차를 타고 이곳까지 흘러들었다. 함께 고생하는 사이지만, 둘은 나름대로 호흡을 맞춰 양때를 보살피고 대자연의 품에서 깊어져간 그들의 우정은 친구 사이의 친밀함 이상으로 발전해간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4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단번에 브로크백에서 서로에게 가졌던 그 낯선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이들이 관계를 가지고 나서 둘은 모두 서로 ‘난 게이가 아냐’라고 얘기한다. 조심스럽게 만나는 두 사람. 두 사람 모두 가정이 있고 애인이 있고 자녀들도 있다. 가능한 조심스럽게 만나길 원하는 에니스와 달리 잭은 무모하지만 둘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한다.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많은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가 그렇듯이 이들의 관계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 과연 동성애란 무엇인가? 동성끼리 성관계를 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성적 충동을 느끼는 것인가? 그건 그들 사이의 감정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어서인가?


어떤 사람을, 무엇을 어떤 틀 속에 가두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짜증나는 일이지만, 우리의 삶의 많은 것들은 우리가 그어놓은 선, 사이의 경계에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결코 요란하지 않게 우정과 사랑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 남자에게서 여인과의 사랑과 남자와의 사랑은 나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동성애자는 따로 있고 동성애자가 바람을 피우면 다른 ‘동성’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나는 쉽게 짐작하고 있었다. 동성애자는 '동성만을 사랑하는' 종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의 마음속, 혹은 호르몬 속에 아주 조금은(혹은 많든) 동성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가 내재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고 살아가지만, 이성과 사랑을 나누어야한다는 관습 안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동성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사랑은 허용해서는 안되는 것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영화에서는 동성애자의 ‘인권’애 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에니스와 잭의 삶을 잔잔하게 보여줄 뿐이다.


소위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브로크백 마운틴의 절경과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이어지는 미국사회의 흐름.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하고 스스로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가야할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조금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미디어몹 : 2006/03/15)

  1. 에오윈 2006-03-15 22:26

    네, 역시 다소 지루해서 깜박 졸기도 했지만, 그 쓸쓸함에, 엇갈리는 사랑에 조용히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남자 따윈 없어도 좋아 하는 순간을 동성 친구와 나눠 본 적이 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사랑'까진 안 해 본 것 같긴 하지만요.

    1. 음유시인 blog 2006-03-16 19:56

      쓸쓸함... 이라, 그렇군요. 영화 보고나서 받은 어떤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었는데 말이죠~
      불행히도 지금은, '여자(님) 필요 없이'는 살 수는 없을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