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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갇힌 자들의 절규 - 정유정, '28'


전염병으로 고립된 사람과 개들의 이야기다. 


이따금 AI같은 가축 전염병이 일어나면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살처분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가축의 문제에서 사람의 문제로 옮겨온 작가의

시도가 <28>이라는 작품이다.


전염을 막기위해 전염 인자를 고립하여 파멸시킨다는 점에서 확실히 80년의 광주를 떠올릴 수 있다. 

인수공통 전염병을 차단하든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빨갱이를 진압하든 ,

국가와 군대는 이들을 보듬어야할 식구가 아니라 파멸의 씨앗으로 보고 괘멸시킨다. 

기저에 이런 상황에 대한 분노가 따르지만, 정유정 작가의 에너지는 이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과 인간성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에 대해 주로 발현되었다.


개들은 포크레인에 묻히고, 빨간 눈들의 환자는 수용소에 몰아 놓고

화양시 전체를 봉쇄한 대한민국의 정부와 군대는 그들을 구제할 의지 없이 오직 화양시에서

사람이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할 뿐이다. 구덩이에 파 묻힌 개들은 살기위해 튀어 올라왔다가 

군인들의 총검에 짓이겨지고 정부와 군대에 의해 고립된 사람들은 강도, 방화, 약탈, 강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만다. 

여섯명의 주인공들은 각자 그들의 상황에 의해 각자의 시선으로 이 아비규환 속에 몸부림치는 

28일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확실히 속도감이 있고, 무엇보다 작중인물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앵글로 따라가는 것 같은 등장인물의 디테일한 시야를 느낄 수 있고 사건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으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시종일관 이루어지다보니 사실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확실히 작품 전체에 짙게 깔린 염세주의적 색채로 인해 다 읽고 나면 뭔가 먹먹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