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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야만에서 문명으로 옮겨 오고 있었을까 - 임용한 '한국 고대 전쟁사 1~3'

 침착맨이 삼국지를 다룬 유튜브를 보다 임용한 선생을 알게 되었다. '전쟁사 전문가가 별로 없으니 한번 도전해 보라'는 지도교수 및 선배들의 권유로 임용한 선생은 전쟁사를 다루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 저작 '전쟁과 역사' 시리즈가 히트를 치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쟁터로 향하는 어떤 인물의 행동이나 생각을 두세 페이지에 걸쳐 소설처럼 묘사하는 장면으로 각 챕터를 시작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각 챕터의 프롤로그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그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 인물 - 꼭 유명한 군주나 장군이 아닌, 병졸이나 보급병 등의 시선일 때도 있다. - 이 어떤 배경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역사의 한 가운데로 달려가는지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영감은 30년전 수나라의 원정 때도 공성구 제작 사업에 참여했었다. 그가 악몽을 꾸는 이유도 그 때 동료와 친척들을 모두 잃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리를 확신한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영감은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 때는 규율과 기강이 엉망이었어. 식사도 좋았다 나빴다 했고, 제품 검사도 형식적이었지.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정확하고 엄격해. 그뿐인가, 이 목재를 봐. 모두가 최고급 주목과 괴목, 남방의 비자나무야. 이런 고급 목재에 수령과 건조 상태도 모두 우수하고 정확해... (중략)... 이번 충차를 보게, 좁고 짧게 만들어서 좁은 비탈을 오르기 쉽게 했어. 대신 봉의 길이도 짧아져 타격력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서 앞부분에 추를 달아 훨씬 무겁게 만들었지. 이런 군대와 이런 장비는 생전에 본 적이 없네. 수나라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야. 너무 염려하지 말게, 이번에는 우리가 쉽게 승리할 거야. 자네들은 살아서 돌아올거네. 엄한 사고나 당하지 않도록 몸조심만 잘하게나."'

 나당연합군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서 수많은 고구려와 백제의 왕족, 귀족이 당의 수도 장안으로 옮겨가 당 제국의 일원으로 자리잡아 살아갔다는 얘기는 조금 낯설고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중 백제 부흥군의 장수였다가 당군에 귀순했던 '흑치상지'는 뭔가 영화로 만들어도 꽤 이야기가 될 법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장비 이미지의 용맹한 장수였지만 어린 시절에 논어, 맹자, 춘추, 한서, 사기를 읽은 지적이고 점잖은 교양인이었다고 한다. 당 고종은 그를 [부하들에게 어질게 대하지만 아랫사람이 건방지거나 풀어지게 하지 않고, 괜히 폭력을 행사하거나 억지를 행하지 않고도 위엄을 세울 줄 안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백제 멸망 후 장안에 왔을 대의 나이가 36세였다. 그 때부터 수년간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웅진도독부가 신라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자 당의 흑치상지를 백제 지역 지방관으로 임명하는 인사 조치를 한다. 그러나 백제 파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추측컨데 당 조정이 그를 포함한 백제 구세력에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때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서 6년 뒤, 중국 장안 서남쪽 200km에 떨어진 양주 자사로 부임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토번족을 토벌하는 군대에 편장으로 임명되어 무능한 문관 출신 사령관이 말아먹은 전쟁에서 결사대를 조직하여 부대를 위기에서 구한다. 이후 돌궐족과의 전쟁에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두고 계속 승승장구하여 당 조정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안타깝게도 측천무후 시절 일어난 피의 숙청 때 모함에 휘말려 투옥되고 옥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그 후 맏아들 흑치준이 흑치상지의 무고를 호소하는 상소를 올려 복권되기도 하고 흑치준 역시 뛰어난 무장으로서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고국을 멸망시킨 제국의 수도에 들어가 관리가 되어 봉직을 받고, 당을 위협하는 북방 이민족과 전투를 벌이다 당의 사화에 휘말려 숙청을 당하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외부 민족의 유입과 유출 없이 한 곳에서 2천년을 살아온 한반도인이 오히려 인류학적으로 독특한 케이스에 가깝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거란과 말갈 등 북방 오랑캐, 왜, 수, 당의 관계.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졌던 국가, 민족, 부족, 공동체에 대한 인식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국가의 개념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라는 인식을 견지하며 이 책을 읽었다. 어쩌면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백제는 2차 세계 대전 시대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인이 서로를 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했던 활동들이 반민족적이라고 바라보는 것은 현 시대의 우리 시각에 짜맞춘 해석은 아닐까 고민하며 책을 읽었다. 어쨌든 전쟁은 비참하고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지만, 그만큼 역동적이고 불행히도 재미있는 것이라서 꽤 두꺼운 3권의 책이었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