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예술,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화두를 한강 작가는 이 작품 <그대의 차가운 손>을 통해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소설가인 작가 H가 조소 미술가인 장운형의 노트를 공개하는 액자식 구성의 이 작품은 석고 라이프 캐스팅의 모델인 두 여인 L, E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껍데기와 본질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며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은 1~3부로 되어 있는데, 1부 '손가락'은 장운형의 성장기를 다루고 2부 '성스러운 손'은 L, 3부 '가장무도회'는 E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L과 E는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로 보입니다. 그러나 두사람 모두 과거 부터 도망치기 위해 본래의 자아와 유리된 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장운형이 왜 이런 인물들과 라이프 캐스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1부 장운형의 가족사와 성장기에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에만 신경쓰는 이중적인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큰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쇼윈도 부부처럼 행세하는 아버지. 그 둘 사이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산 외삼촌을 보며 성장한 장운형은 안경 속에 진짜 스스로를 감추며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몇몇 독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순수 미술을 다루는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몰입감이 드는 소설입니다. 물론 그 몰입감 안에는 장운형과 L과 E와의 위태로운 감정과 줄타는 사랑이 한 몫을 하기도 합니다. 석고 작업과 그로 인해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섬세하고도 강렬한 묘사가 인상적으로 특히 E가 장운형의 몸을 석고로 뜨는 장면은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이자 백미입니다. 장운형의 라이프 캐스팅은 처음에는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은 그 안에 거짓없이 드러난 진실된 인간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보니 겉으로 보면 건조해 보일 수 있는 미술 작가의 삶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생각과 인식은 엄청난 파도 같은 걸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작품을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