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인지 토스팀 사람들은 유난했다. '토스 한번 살펴봐달라'는 손편지를 수백 장 써서 은행 지점장들에게 부쳤다. 늦은 밤까지 일하다 퇴근해도 아침이면 1분 1초라도 빨리 사무실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고 했다. 내 손가락이 더 빨리 움직일 순 없을까 아쉬웠다고 했다. 제품을 출시한 날에도 '그동안 고생했다'고 격려하기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1시간 간격으로 밤새워 지표를 들여다봤다. 성장은 피곤도 아픔도 잊게 한다고 했다. 끝의 끝까지 파내려가야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토스팀원들이 말하는 몰입의 순간들이었다.' - page 9
모바일 플랫폼 회사에 몸 담은지 이제 5년이 되어 가는 이때, 계속 독서 목록에 올려 놓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읽어 보게 되었다. 업계 이해도도 높아지고, 사업도 훨씬 안정화된 지금이 출간된 시점보다 이 책을 받아들이기 더 적절한 시점인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2022년 11월에 출간되었다. 토스가 은행, 증권을 출범시키고 완전히 종합금융플랫폼으로 자리잡은 시기이다. 3년이 지난 2025년 현재 토스의 위상은 그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여 IPO시 예상 시가 총액 20조를 바라보는 공룡이 되어 버렸다. 한편, 업계에서 토스는 살인적인 업무강도와 비인간적인 조직문화로도 유명했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슬랙 메시지와 극단적인 솔직함의 외피를 쓴 잔인하고 필터없는 평가와 업무 피드백. 카카오나 당근, 과거 배달의 민족처럼 서로 극존칭을 쓰며 친절함과 상냥함이 온 사무실에 피어오르는 동종업계 회사와 대비되어 <토양어선> 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이 책에서는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한창 외부, 특히 IT개발자 사이에서 토스에 대해 잔인한 조직이라고 평가했던 [스트라이크 제도]와 [3개월 수습 평가 후 탈락]을 폐지한 배경과 히스토리에 대한 나름의 답변도 포함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출근은 오전 11시였고 퇴근 시간은 정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데 지장을 주지만 않는다면 언제 퇴근하든 서로 상관하지 않았다. 사정이 있으면 누구나 상황을 공유하고 일찍 사무실을 떠나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밤 11시를 넘겨 퇴근했다. 이태양은 매주 수요일 오후 5시에 퇴근해 대전에 내려갔지만, 다른 날들은 새벽까지 일하고 근처 사우나나 사무실에서 눈을 붙이곤 했다. 좋은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열망은 강했고, 일손은 항상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야근을 덜 하면서도 강력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는 해묵은 논의 주제로 남았다. 언제 부턴가 '해내세요'라는 말은 팀의 유행어가 됐다. 비속어가 좀 섞였지만, 미국 스타트업에서 구호처럼 쓰는 'Get shit done'이라는 말에서 따왔다. 모든 것은 의지와 실행력의 문제일 뿐,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의 표현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팀원에게 해내세요는 변명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팀원에게 해내세요는 응원이었다. 은행에 수수료 협상을 하러 가는 이승건에게 팀원들은 해내세요.라고 외쳤다. 누군가 몸살이 나서 하루 쉬겠다고 메시지를 남기면 완쾌해내세요. 댓글이 달렸다.' -page 91~92
많은 IT플랫폼 기업들이 그렇지만, 토스/비바리퍼블리카 역시 수없이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해 나갔다. 치과의사 이승건이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공화국 만세라는 거창한 이름의 '비바리퍼블리카'를 창업했고, 8번의 실험과 우당탕탕 끝에 간편송금으로 서비스 방향을 잡는데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후로도 수많은 제도적, 재무적, 인사적, 법률적 난관에 부딪혀 나가고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공룡들 틈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생존과 성장을 거듭한다. 빠른 실행, 이로 얻는 실패와 경험, 체화된 경험을 바탕으로 서비스 개선 혹은 빠른 피벗을 반복해 나가는 과정이 약 330page의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래도 해볼 만한 사업이었다. 적은 돈을 토스에서 빌리고 갚아본 청년들이 '대출은 토스'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시간이 흘러 큰 돈이 필요할 때 자연히 토스를 찾을 것이라 짐작했다. 자본 규모가 작은 토스 대부는 최대 50만원을 한 달 동안만 빌려주는 소액 대출을 운영하되, 더 많은 돈을 빌리고 싶은 고객은 다른 금융사와 연결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세워 두었다. 그러나 <토스 대부>라는 이름이 불러온 파장은 난데 없고 거대했다. 팀원 몇몇이 물었다. "정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서비스가 아니라 순전히 이름 때문에 오해받는 것 뿐인데 이렇게 포기하는게 맞나요?" 그 심정도 이해는 됐다. 그러나 탈퇴가 이 속도로 계속 늘어난다면 오해를 풀기도 전에 회사가 무너질 지도 몰랐다. 김유리는 묵묵히 토스 대부 폐업 절차를 밟았다' - page 119

이 책에는 최근 카카오 CPO로서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카카오톡 서비스 개편으로 곤욕을 겪고 있는 홍민택님이 토스뱅크를 출범한 전후의 활약과 성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대목을 보면 그가 어떤 스타일의 인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이미 성장할 대로 성장한 안정적인 대기업이 되어버린 카카오로 옮겨 서비스 개선을 추진했을 때 얼마나 갈등이 심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용자 반응이 나왔을 때 반대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고소하게 생각했을지도 추측이 간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이 맞다면, 홍민택 CPO가 이런 이슈에 어쩌면 그다지 타격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승건은 예리한 제품을 만드는 사람보다 복잡한 조직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는 사람이 토스 뱅크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은행이 만들 제품 영역은 수신과 여신으로 정해져 있는 반면, 여러 주주사가 참여하는 만큼 조직문화 면에서 도전과제가 매우 크고 복잡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 점에서 홍민택은 적합한 후보가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제품에만 미쳐 있는 PO(Product Owner)였다. 조직 내 갈등과 정치를 극도로 싫어했고, 부드러운 접근 보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상대방을 격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곧이어 이승건의 생각이 바뀌었다. 토스뱅크가 성공하려면 모두 엇비슷해 보이는 은행 수신과 여신 상품의 경계를 부수는 과감함이 필요했다. '은행이라는 조직은 원래 이렇다'는 틀을 깨는 걸 겁내지 않으며,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일하는 토스의 방식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홍민택이야말로 적임자였다' - page 243
이 책의 전반부, 토스 증권과 은행 출범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이 흥미진진하고, 후반부 도약기에서는 서비스와 조직을 탄탄히 다잡아 본격적인 성공으로 향해 가는 스토리가 주를 이루어 개인적으로 배울 것이 많았다. 저자 정경화님은 토스 커뮤니케이션팀에 입사한 기자 출신으로 이 책의 출간 프로젝트를 맡았다. 크래프톤 이야기나 배민다움 같은 국내 스타트업과 관련 서적 뿐만 아니라 일론머스크, 나이키의 슈독, 디즈니 이야기 등을 쓴 해외 타 작가들 못지 않는 글솜씨가 있어 이 책을 다 읽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