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밥벌이의 즐거움

불타는 투혼으로 승부한다 - 이나모리 가즈오의 마지막 수업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원칙 12개를 소개한 책이다. 12개의 원칙은 대략 이렇다. '강렬한 열망을 가슴에 품는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노력을 한다', '불타는 투혼으로 승부한다' 등등... 솔직히 말하면, '착하게 살자', '좋은 사람이 되자'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 같고, 더 솔직히 말하면 전후 일본 고도 성장기에 창업에 성공하여 글로벌 대기업을 만든 1.5세대의 정주영 같은 분의 꼰대 같은 소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같은 분이 대세인 시대에 1932년에 태어난 일본 제조업 마스터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비주류 인디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색다른 느낌도 들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링크)는 1932년에 태어난 공학도 출신 창업자다. 종업원 28명의 작은 중소 세라믹 제조 업체로 출발해 종합 전자 부품 회사로 교세라를 성장시켰고, 일본 통신회사인 KDDI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오히려 커리어의 정점은 65세 은퇴 이후 일본 총리의 부탁으로 망가져버린 일본항공(JAL)의 최고경영자가 되어 회생시킨데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경영 서적도 많이 출간하셨는데 저서 중에서 가장 최근 발행한 책이 이 '마지막 수업'이다. 이 책을 발간된 해인 2022년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경영 철학의 상당 부분이 뭔가 투지와 투혼을 발휘하면 못할 게 없다는 식의 Old Style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요즘 같은 트랜드에 어울리지도 않고 우리 산업화 시절의 고군분투를 떠올리게 되어 과연 현재 경영 스타일에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새겨볼 말씀이 있어 옮겨 보았다.

1. 중장기 계획은 필요 없다 - 해마다 우직하게 노력한다.

 가즈오 선생은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1년 단위 계획만 수립한다고 한다. 장기 계획을 수립하게 되면 여러 대내외 변수로 매출은 달성하지 못하게 되나 비용이나 인력 충원 목표만 계획대로 진행하게 되어 비용 증가와 경영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기 계획은 항상 빗나가게 마련이고(대부분 목표 미달) 빗나가는 경영 계획을 임직원들이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도 사실 1년 단위 이상의 경영계획은 잘 수립하지 않는데(아마 비슷한 이유로) IT플랫폼 회사가 아닌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에서는 이렇게 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쩌면 원가 통제를 하기 위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 건 좀 새겨볼 만하다. 장기 계획을 수립했을 때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비용 뿐이다.

2. 목표 수립에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

 "샐러리맨 경영자, 즉 제한된 부분을 경험한 사람을 후계 사장으로 정하게 되면 그 결정을 한 순간부터 제왕학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원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납작 엎드려 1개월씩 각 부문을 돌아보라. 모든 부문을 1년에 걸쳐 경험하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장의 자격은 없다고 말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1년간은 실습이다. 우선은 경리에게 가서 회계 기초부터 배워 오라. 거기서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훌륭한 경영자가 될 수 없다. 사장에게 실권을 넘기는 것은 1년 후부터다라고 말하며 경리 업무부터 영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을 1개월씩 순환시킨다. 이러한 교육을 거치게 해야 한다." - page 50~51

 "아메바경영은 일반 재무회계와 달리 경영자가 경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관리회계 방식이다. 교세라에는 지금도 10여명으로 구성된 '아메바'라는 소집단이 1,000개 이상 짜여져 있다. 아메바 경영에서는 각각의 아메바가 시간당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가라는 독자적인 지표로 수치를 표시한다. 간단히 말하면 각각의 아메바 매출에서 사용한 비용을 모두 차감하고 남은 금액을 그 달의 총 노동시간으로 나눈 숫자를 지표 삼아 경영하고 있다.... (중략).... 그 필요성은 일본항공에 취임하자마자 체감했다. 내가 현재 경영 실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라고 물어도 좀처럼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 항공업계 수익은 비행기 운항으로 발생하는데도 노선별, 항공편별 채산을 물어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일본항공에는 그런 관리회계 구조도 없었고 그렇게 파악해 보려는 시도도 없었다. 어느 노선 또는 어느 항공편이 어느 정도의 수익은 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중략)... 나는 아메바 경영을 바탕으로 부문별, 노선별, 항공편별로 실시간으로 채산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나아가 각각의 책임자 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도 만들었다." - page 94~95

3. 왜 고수익이어야 하는가

 이 부분을 특히 별도로 하이라이트한 이유는 IT플랫폼 회사에 와서 '수익'에 대해 의외로 많은 구성원들이 둔감하다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IT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를 모으고 사람들이 모이면 수익은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걸 '계획된 적자'라는 표현을 쓰며 당연하게 생각하는 조직 구성원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 아마존, 우버, 가깝게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회사들이 또 이런 전략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가 있기도 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어쨌든 수익이 나지 않으면 회사는 현금이 돌지 않아 생존할 수 없고 여러 생각지도 못한 외부 변수에 의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BM을 잘 구성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수익은 미래에 상승할 인건비 등 앞으로 발생할 비용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15%의 수익율을 거두고 있다면 매년 3%씩 인건비가 올라간다고 해도 5년은 임금 상승을 견뎌낼 여력을 갖게 된다."

 "고수익을 달성하면 세금을 내더라도 충분한 수익이 남는다. 그렇게 생긴 여유 자금을 운용하면 사업을 다각화하는데 용이하다. 예를 들어, 교세라의 경우 파인세라믹스의 사업 만으로는 회사의 미래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어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절삭공구와 재결정 보석, 인공치근, 태양전지 등과 같이 다른 분야나 타 업종 진출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중략)... 기업을 장기적으로 성장/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신사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사업은 그리 평탄한 길이 아니다. 당시 신사업은 당연하다 할 정도로 적자가 나는게 일상적이었다. 그런 적자를 감당하고 사업을 계속 하기 위해서도 기업은 고수익을 내야만 한다." - page 102 ~ 106

 

4. 창조적인 일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낙관적으로 구상하고, 비관적으로 계획하고, 전향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신제품 개발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좋은 대학을 나온 똑똑한 사원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구하면 다들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좀처럼 동기부여가 되질 않았다. 내가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어이없어 했다. 대기업 메이커의 세라믹 전문 기술자가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너무 쉽게 떠안고와서는 아무런 연구 설비도 없이 해보자고 하는 건 너무 무모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제품 개발을 시작할 때 머리가 좋지만 냉랭한 개발자는 부르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소 어중간한 사람들이라도 그거 흥미로워 보입니다 라고 말해주는 직원을 주위에 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하게 되면 회사가 잘될 겁니다 라고 말하며 해 봅시다라고 호응해 주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험 계획을 짜고 시제품을 제작하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어정쩡한 사람으로는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머리가 좋고 냉정한 사람을 불러 어디가 문제인지를 잘 알고 있는 당신이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계획을 세우게 했다. 얼마나 어려운지, 왜 무모한 계획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부 알려준다. 그것이 전부 안내 지침이 되는 것이다 그 후 실행 단계에서는 그 주의사항을 감안하면서도 다시 전향적으로 진행한다." - page 174 ~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