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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바라고자 하는 바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계관이란 건데, 이를테면 인간을 욕망에 가득 찬 존재로 보는 사람은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파악한다. 또 어떤 사람은 협동, 박애에 기반한 공동체적 연대성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 지상주의의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에서 나름대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마 그러할 것이다.

'렉서스'는 글로벌 자본주의하에서 완전 자동화된 생산 시스템으로 제작, 판매, 유통되는 토요타 자동차의 고급 브랜드다. 세계화 체제에서 번영을 추구하고자 경제체제를 합리화하고 효율화하는 모든 것을 상징한다. '올리브나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비롯된 상징으로 자신의 뿌리라고 믿고 있는 가치관을 지칭한다. 올리브나무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근거로서 존재 의미를 말해주며, 한 곳에 정착하게 해 줌으로서 마치 배의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렉서스는 물질적 부를 추구하고자하는 욕망의 반영이고, 올리브나무 역시 뿌리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적 가치를 갈망하는 욕구의 다른 모습이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세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긴밀해지고 있는 시대, 거대 이념은 사라지고 개인, 사회, 국가, 세계는 스스로의 이익에 충실하고자 다투어 노력하고 있다. 냉전 이후 우리 삶을 뒤뎦고 있는 '세계화'는 이념이라기보다는 흐름이며, 저항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얘기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사회민주주의는 흔들리는 지금,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체제는 부정할 수 없이 자유민주주의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국가간 자본의 흐름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전자투자가'의 자본을 끌여들이려면 '황금구속복'을 입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황금구속복은 작은 정부, 사회복지 재정 감축,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시스템이다.

저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화의 가장 발전된 모델은 미국화이다. 물론 미국이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자유롭고 효율적이며 역동적인 경제 모델을 미국이 모범적으로 제시해 주기 때문이라는 거다. 미국인으로서 미국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리드먼의 주장이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그다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논리와 근거가 명확하다. 뉴욕타임즈 기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권한 ;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만날 수 있다 - 을 이용해 너무나 풍부하게 사례를 들어놓았기 때문에 .

그러나 저자는 또한 세계화가 가져오는 문제점도 놓치지 않았다. '렉서스'에 환호하는 만큼 '올리브나무'를 소중히 가꾸는 것도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은 더욱 증대된다고 한다. 즉 세계화는 결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닌, 하나의 현상 - 아주 강력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거대담론이 급격히 퇴조하고 있는 현 추세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지점은 다르되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의 영역에서 사회적 안정망을 바라보느냐, 혹은 사민주의자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찾느냐의 차이라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이 많았다. 혹은, 적어도 '세계화'는 긍정하되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했다. 세계화가 주는 어감은 가치중립적인데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도구화시키고 물질 중심적인 가치를 주입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기보다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리드만의 탁월한 점은 단정적인 말투로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여러 사례를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균형감있게 다양한 관점과 시야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미있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장의 역동성이 경제에 활력을 불러넣는다고 믿고 있는 나는, 프리드먼의 이 책을 보면서 '글로벌하게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단순히 비지니스맨이 외치는 구호로서만은 아니다. 어떤 영역에서 무엇을 하든지 날로 연결되고 조밀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국지적 시야를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친 망이지처럼 날 뛰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공공성이 어떻게 자리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 효율성과 부를 놓치지 않으면서 보편적 인권과 공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좀 두껍긴 하지만, 기본적인 경제 상식만 있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번역도 훌륭하게 됐고... 프리드먼은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늘였다 당겼다 하는 재주가 있다.



'위의 두 이야기는 세계화가 민주화에 미치는 상반된 파급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제대로 활용될 경우 전자투자가 집단은 어느 국가든 더 좋은 운영 체제와 더 좋은 소프트웨어 등 민주주의의 특질을 더 잘 갖추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전자투자가 집단과 초거대 시장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장 두렵고 위압적이며, 또한 가장 무례한 세력이기도 하다.'
-p298


'세계화도 마찬가지다. 세계화는 결국 늘 균형을 유지한다. 다만 약간씩 이쪽저쪽으로 기울었다 되돌아왔다를 거듭할 뿐이다.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의 직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퇴하고 있다기보다는 진보하고 있다고 항상 믿게 해주는 것이다. 그럴 때 세계화는 지속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을 보장하는 커다란 책임과 많은 기회에 있어서, 미국과 비견될 나라는 없다.'
- p725

(미디어몹 : 200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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