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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이 책은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치 선진국이며,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서구 유럽의 선진국 (특히 영국과 미국)도 겪고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어려 상황을 볼 때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정점'을 찍고 앞으로는 퇴보될 우려가 있으며,

이는 결정적으로 야권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므로, 제대로 된 야당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한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데 이 책은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한국 안박으로 반 민주주의가 증대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이에 저항할 만한 힘이나 역량, 자질을 가진 어떤 인물도, 어떤 조직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가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효율적인 야당의 존재다. 현재로서는 집권당인 새누리당만이 체계적인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전략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치고, 어떻게 해야 이길지 간파하고 있는 당은 새누리당 뿐이다. 나머지 정당들은 뜻은 좋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선거에서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부의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선의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 P. 22 ~ 23'





저자 다니엘 튜터가 지적 중에서 두 가지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는 야권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운동권 386의 후진적인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제조업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나타나는 제조업 쇠락 (혹은 어설픈 서비스업으로서의 이행)이었다.


'2012년 대선에 얽힌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고위 당 관계자 두명을 만났다. 필자의 친구이기도 한 그 기자는 선거 캠패인, 정책과 경제, 남북관계 등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시각을 포함해 다양한 질문으로 무장하고 당사를 찾았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귑게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는 인터뷰 당사자가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는, 만만치 안은 상대로 악명 높은 기자였다.

막상 만나보니 당 관계자들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준비해간 질문에는 전혀 관심 없고, 1980년대 본인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경험이 된 학생운동 이야기로 논의의 초점을 바꾸기로 작정한 듯 했다. 한국의 현재나 미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의 이해를 옹호하는 보수 일간지로 알려져 있으나, 기자는 사실 문재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문재인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채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 같은 박근혜와 달랐다. 특히 문 후보의 특전사 경험, 인간미 넘치는 성품 등을 높게 샀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은 미국 유력 일간지에 문 후보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가 보도될 수 있는 기회를 허공에 날려 벼리고 말았다. 보도 자체가 안 될 가능성이 컸다. 요즘 세상에 학생운동이 뉴스 거리가 되겠는가? 

- p.135'


'한국 노동계에 닥친 재난은 한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한국은 저임금 생산지로 세계화 물결에 합세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한국 기업이 한국보다 임금이 낮은 나라로 생산지를 이전하는 것을 두고 기업 이기주의라고 욕 할수도 있지만, 기업 측면에서는 생존전략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연관 산업 일자리의 기반이기도 한 한국 제조업 생산 기지가 약화되고, 제조업 일자리의 양적ㆍ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사태의 전조로서, 결국에는 대량 실업과 심각한 사회 분열로 이어여 울산이나 창원같은 대표적인 공업 도시는 심각한 퇴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다수의 고급 제조업 일자리를 잃어버린, 아니 사실상 포기한 나라에서 자고 나란 필자는 산업 공동화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잘 알고 있다. 영국이 현재 겪고 있는 소득과 기회의 불균형, 빈곤, 복지 의존 등의 문제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방에 있던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임시직과 단순 서비스직이 그 자리를 메운 결과다. 현재 이상적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영미식 모델을 폐기하고 스위스나 독일 같은 나라를 본받아 고급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의 동반 발전을 추구하지 않으면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p. 168 ~ 169'


결국 그 사회의 정치는 그 국민의 오롯한 몫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 수준에 맞는 정치를 꾸려갈 뿐이다.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고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선조, 선배들부터 참 어렵고 힘들게 이만큼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 왔고, 잠시 어려움은 있겠지만 앞으로도 뚜벅뚜벅 느리더라도 반드시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저자의 날카롭고 따뜻한 한국 사회에 대한 일침에 깊은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