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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재평가


난 신문 읽는 걸 참 좋아한다.

사람들의 취향이 점점 빠르고 새로운 것을 찾아갈수록 나는 왠지 올드 미디어의 향기가 더 좋아진다. 대부분의 정보를 나는 신문, 라디오, 잡지에서 얻는다.

가끔 경제면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비지니스의 세계는 - 잘 모르지만 - 예술이나 대중문화처럼, 혹은 그 못지 않게 유행을 타는 것 같다. 특히 잘 나가는 기업인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대부분 모두 비슷비슷한 말들을 하곤 한다.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원한다든지, 혁신 없이는 도태된다는지, 창조적 열정이 중요하다, 등등의 말들.

난 이 말들이 다 우리나라 학자나 경제인들이 만들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대부분 영미권에서 쓰는 말을 가져온 것이었다. 요즘 필요에 의해서 반, 흥미 반으로 경영 서적을 많이 읽고 있는데, 혁신(innovation), 세계화(globalization), 경쟁력(competitive power), 인적 자원(human resource) 등등이 그 예다. 특히 '경쟁력'이란 말은 거의 전 영역에서 유행어처럼 풍부하고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듯 하다. 난 그 단어가 주는 냉혹함과 상대성이 싫어서 기왕이면 '능력' 이나 '역량'이란 말을 쓰려고 한다. 인간을 물화(物化)시키는 단어인 '인적 자원'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외국계 기업의 경영자나 경제관료들 같은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 얼추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비슷한 말들을 하지만, 유심히보면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쓰지 않는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는 단어를 꽤 즐겨 쓰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조깅을 하면서 업무에 관한 영감을 얻곤 해요' 라든지 '탈무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글로벌 환경의 기업인에게도 큰 영감을 줍니다'라든지 말이다. 뭔가 큰 느낌이나 깨달음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난 이 말이 참 맘에 든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생각치도 못한 무언가에 의해 큰 감동을 받거나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론 그 작용이 너무나 커서 인생의 큰 행로가 바뀌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주 자그마한 막힘이 뚫리기도 하고...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것들은 논리적 사고보다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감성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법이다.

서양 사람들이 그런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우리나라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문화가 녹아있는 법이니까. 경제신문, 혹은 일간지 경제면을 보면서 나는 수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뛰어난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거나 판에 박힌 공식같은 말만 할 게 아니라, 기사를 읽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감성적인 말들도 해 주면 좋겠다. 남들이 하는 말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문화 때문일까?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를 늘어놓을 때 나는 그냥 비지니스 인터뷰면을 확 넘겨 버린다.

(미디어몹 : 2006/05/06)


  1. Kyria 2006-05-07 08:45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는 것도 한 몫 합니다. 당당하게 이야기했다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소리 듣거나 헛소리라는 비난 받느니 차라리 안전하게 남들 다하는 얘기에서 단어 몇개 바꾸고 위치 변경해서 하는 거지요. 인터뷰에 대해서라면 아래사람이 대신 써주는 것도 한 원인입니다. 질문 먼저 보내고 아래사람이 적당히 작성해 주면 그거 낭독하거나 그대로 보내는 거잖아요. 대신 써주는 아래사람 입장에서는 괜히 감성적으로 영감을 담아서 자신감 있게 썼다가 튄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지적 받으면 모가지가 간당간당 하니까 안전하게 가는 수 밖에 없겠죠.
    잘 읽었습니다!

    1. 음유시인 blog 2006-05-07 09:14

      아, 혹시 '홍보실'이나 '비서실'에서 근무하시나요? 인터뷰 대신 써주는 사람도 있나 보내요... 그건 전혀 생각 못했군요~ 참, 그런 인터뷰 정도는 자신 생각 담아서 해도 되지 않나? 쩝, 그렇게 바쁜가? 어차피 자기 인터뷰하러 온 거잖아요~

      점점 더 보기 싫어집니다. T.T

    2. Kyria 2006-05-07 09:53

      ㅎ 그런데 근무하는 건 아니구요.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문에 나갈 정도의 인터뷰나 기고문 같은 거는 외부 전문가나 내부 부서의 자문,검증을 거치거나 회의하고 교육(?)받고 그러는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직접 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바쁘기도 하고 말 한마디가 한마디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위치에 있다보니 그러는 거겠지만 생각이 분산되고 합산되고 다듬어 지다 보면 감성적인 것은 설 자리를 잃게 되겠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영감을 대신 표현해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자기 감정과 영감을 미리 검증받는 다는 것은 그다지 내키는 일이 아니니까요. 우리나라 뿐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그러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긴 외국에는 작은 모임에서 하는 연설이나 자기주장 표출,언어유희 이런걸 즐기는 문화가 있으니 덜 딱딱하고 재밌겠죠. 뚝~! ^^;

  2. 말리 blog 2006-05-07 09:16

    어제 KBS 스페셜에 '禪' 에 관한 다큐를 하더군요. 얀이라는 독일인 유학생의 눈으로 따라가 본 禪의 세계를 보여 준 것인데, 내용 보다는 전국 사찰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모습과 차를 마시는 그 통나무 그대로의 다탁(?)이 너무 훌륭해서 입을 벌리고 보았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말들은 또 너무나 영적이어서 따라잡기가 힘들었습니다만, 세상과 산사는 참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요. 그 가운데를 오가는 사람들이 그 말들을 생활 속에 녹여내면 우리의 말들이 훨씬 풍부한 감성을 가질텐데요. (아~댓글이 생뚱인감 ==33=33)

    1. 음유시인 blog 2006-05-07 23:08

      후후, 브라운관으로 보는 것 보다 직접 가서 느끼는 건 아마 백배는 멋질껄요?? 저도 이번 5월 5일엔 우이동에 있는 도선사에 다녀왔더랬답니다. 불교계에서 큰 행사라 고즈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것도 그런데로 괜찮더군요~

      나중에 한번 가 볼까요?? 제가 차 몰고 말이죠~ ㅎㅎㅎㅎ

    2. 음유시인 blog 2006-05-07 23:09

      아, 혹시 나중에 시간되시면 교토에 꼭! 가 보세요... 환상적인 모습에 넋을 잃을 겁니다. 불행히도 너무 잘 알려져서 고즈넉함은 쫌 덜 하겠지만, 아기자기한 정원과 신사, 사찰에 풀 빠지실지도~ ^.^

  3. dehet blog 2006-05-08 11:44

    저는 자서전 같은거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 받았는데요 외국 사람들 자서전은 내가 잘났네 수준을 넘어 일상의 온기와 인간적 고통이랄까 그런게 느껴지는 것들이 더러 있는데 우리나라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부각하는 쪽이더라구요 ...

    1. 음유시인 blog 2006-05-08 22:40

      그렇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보다 뭐 그리 못낫겠습니까마는, 그런 점들은 꽤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결과에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김우중이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 구호를 외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보면 알 수 있겠죠. 그러다 무너진 인간에게 순식간에 또 얼마나 냉소적으로 대하는지... 비록 실패한 결과를 낳았지만, 지금 김우중을 돌아봤을 때, 뭔가 배울 만한 점도 있었다는 걸 얘기하는 사람은 어떻게 단 한 명도 없을까요???

  4. 에오윈 2006-05-09 08:00

    자기 표현을 가르쳐 주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겠죠...조금이라도 튀면 안 된다....

    1. 음유시인 blog 2006-05-10 09:31

      그래놓고 나중엔, 튀어야 된다. 남들과 달라야 살아남는다 라고 가르치기도 하죠~ ^.^ 유행에 따라 말바꾸기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