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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닫는데로/viSit Kingdom

찰나, 운명 등등





그나마 한 숨 돌린 지금에서 이 사건을 돌이켜 보면, '사람일은 참 알 수가 없다'고 깨닫게 된다. 이건 어떻게 보면 큰 일이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기도 한데, 그 경계를 가르는 건 아주 순간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오는 아침 대략 80파운드 정도가 남았다. 50파운드를 배낭에 넣을까 지갑에 넣을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마지막 날이니 지갑에 넣자'고 해서 결국 지갑에 넣었다. 지나가다 예쁜 기념품이나 자그마한 선물거리라도 있었으면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돈을 배낭에 넣었다면 한국인 순수녀에게 돈을 빌리지 않았을 것이고 15파운드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 헤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지갑을 슬쩍 했을 소매치기는 빈 지갑을 보고 짜증내며 쓰레기 통에 쳐박았을 것이다.

또 만일 여권에 명함을 껴 두지 않았으면 그렇게 쉽게 10파운드를 빌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근본적으로, 만일 런던 첫날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다면 마지막 날이 아닌 처음에 지갑을 잃어버리고 기분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채 영국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물론 자금 압박에 계속 시달린 채 말이다. 만일 내가 돈을 아껴본다고 계속 빈하게 여행했더라면 지금 더욱 아쉬워하고 씁쓸해했을 지도 모른다. 부질없긴 하지만, 'if'를 계속 넣어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대책없이 긍정적인 나는 그래도 지금 아주 적절한 시기에 아주 적당한 금액을 잃어버려 아주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한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몇 몇 사람들에게 기념될 만한 선물을 사지 못한 것과 한국에서 카드 및 신분증을 다시 발급받으며 해야 할 성가신 것들이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말이다.

(미디어몹 : 2008/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