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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즐거움

산호초와 도시 그리고 웹 -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책 부재가 '700년 역사에서 찾은 7가지 혁신 키워드', '아마존 최고의 비즈니스 도서' 이렇게 되어 있어 뭔가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디어를 잘 낼 수 있을지 알려주는 자기개발서처럼 보인다. 이 책은 사실 인류 역사상 큰 물줄기에 영향을 미친 아이디어가 어떤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맥락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 따라가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큰 영감을 얻었다는 책 중 하나였다고 한다. 

 책 서문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기 전 수마트라 섬 인근 산호섬과 산호초를 방문해서 산호초 안의 생태계에 있는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연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마트라 섬 육지의 동식물은 야자수, 이끼, 잡초 정도가 전부였으나 그 인근 산호초에는 그보다 더 방대한 종류의 동식물이 살고 있었다. 자연계의 수많은 종들이 산호초에 모여 생태계를 이루고, 산업혁명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험하고, 상업화해 수익을 얻으며 이 수익의 일부가 더 큰 아이디어를 창조해 나가는 바탕이 되었다. 20세기 들어와 웹은 이러한 아이디어와 생각, 정보가 전달되는 비용을 0에 수렴하게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솟아난 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고 공유하고 (때로는 단절되고)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어져 더 큰 가치있는 아이디어로 진화해 나가는지에 대한 여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짚어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윈의 이론은 20세기에 자유시장 시스템을 옹호하는 이론으로 수없이 언급되었다. 엥겔스가 예측했던 것처럼 시장을 동물 세계와 똑같이 본다고 해서 신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했다. 대자연이 이기적인 두 존재 사이의 무자비한 경쟁 알고리즘을 통해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다양성을 지닌 행성을 만들었다면 우리의 경제 시스템도 같은 법칙을 따르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자연은 이기적인 존재들의 무자비한 경쟁을 통해 탄생하지 않았고, 다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종의 기원>은 과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글로 끝을 맺는다. 그 글은 그가 20년도 더 전에 킬링제도를 떠나면서 썼던 일기에 기초한 것이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과 덤불에서 노래하는 새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여러가지 곤충들, 축축한 땅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들로 가득한,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둑을 생각하면 그리고 서로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이 정교한 형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그리하여 자연의 전쟁으로부터, 기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대상, 즉 고등동물의 생성이 이어진다. 생명을 이러한 식으로 보면 장엄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다윈의 서술은 그의 연구 전체를 지배하는 2개의 비유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둑의 복잡한 상호의존성과 자연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계의 공생적 연결과 적자생존이다. 다윈의 이론을 묘사한 유명한 풍자만화는 무엇보다도 경쟁적 투쟁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이론이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통찰은 자연세계와 연결하게하고 협력하게 하는 힘들이 존재함을 밝혀냈다. - page 264 ~ 265"

 아이디어의 자연적인 상태, 아이디어 자체의 본질에 대해 토머스 제퍼슨(미국 제 3대 대통령)이 미국 최초의 특허감독관이었던 시절 철학적으로 논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지속적인 소유권은 사회법의 산물로, 사회가 발전하면서 뒤늦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아이디어, 한 개인의 두뇌에서 일어난 생각에 대해 배타적이고 지속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 궁금할 것입니다. 자연이 배타적인 소유권을 지닌 다른 모든 것보다 덜 민감한 것을 하나라도 만들었다면 그것은 아이디어라 불리는 사고력의 활동입니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한, 그는 그 아이디어를 온전히 혼자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모두의 소유가 되고, 그 아이디어에 대해 들은 사람은 소유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아이디어의 독특한 성격은 누구도 그 아이디어를 덜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모두 그 아이디어의 전체를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서 아이디어 하나를 받은 사람은 내 아이디어를 줄이지 않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양초에 다른 양초의 불을 붙인다 해서 내 양초가 어두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사람을 도덕적으로 가르치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아이디어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퍼져야 한다는 것은 자연이 특별히 자애롭게 계획한 일입니다. 자연이 아이디어를 마치 불처럼 어느 지점에서도 줄어들지 않고 사방으로 팽창하게 만들었을 때, 우리가 그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우리 육체를 갇히게 하거나 독점적으로 전용할 수 없게 만드는 공기처럼 만들었을 때와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발명품들도 본질적으로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page 267 ~ 268"

 

 저자는 법률로서 혁신적인 사람이나 조직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서 이윤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적재산 법률이 인위적으로 아이디어가 결핍되게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이 특허가 만들어낸 인위적 결핍 상태를 이긴다고 보고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공공 부문인데, 정부는 상의하달 관료체제에서 혁신에 관한한 둔한 존재라고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그 공공부문에 의해서 발전되어 민간으로 이양된(미국 연방정부로 자금 지원을 받은 전 세계 정보과학자들의 느슨한 제휴에 의해 만들어진) '인터넷'을 통해 공공부문의 정보가 민간에서 자유롭게 Open하여 더 큰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위에 언급한 이외에 복식부기가 상업활동의 발전에 끼친 영향, 에어컨을 발명할 때의 히스토리등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의 큰 줄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읽어도 이해할 수 있으나 인류의 생활과 진보에 큰 영향을 미친 발견과 발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의 사례를 알고 싶다면 책 전권을 정독해서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