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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藝術의 뜰

상류층이지만 현실적인, 하층민이지만 이상적인 - '자산어보'

 

김훈 선생의 책은 대부분 빼 놓지 않고 보는데, 안타깝게도 '흑산'은 그다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칼의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전쟁이야기, 극적 장면 없이 어쨌든 귀양 선비의 체류기로서 스토리의 기복이 없어서였을까.

영화로 본 정약전 선생의 유배일지는 오히려 담담해서 더 좋았다. 정 반대의 세상을 살아온 스승과 제자가 세상을 대하는 시각이 선명히 대비되는 점 역시 인상 깊었다. 정부 고위직까지 한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자연과 현실의 생동감에 빠져들고, 배움에 목말랐던 제자는 스스로 품은 이상에 가우뚱하는 스승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창대'는 진사에 합격하나 핍박받고 갈취당하는 백성의 삶에 회의하고, 글을 쓰다 숨을 거둔 스승의 영전 앞에서 울먹인다. 

'창대'와 '가거댁'등이 가공의 인물이 아니고 자산어보 및 정약전의 글에 실제 담겨진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도 조금 놀라웠다. 이준익 감독이 비교적 사료에 충실하게 해석했다고 한다. 과한 조미료나 양념이 없어도 신선한 재료의 맛으로 우러낸 지리 같은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